연일 무더위에 밤잠을 설치는 여름이면 기후 변화의 심각함이 더 와닿는다.
우리 가족이 처음 독일에 갔었던 2010년에는 여름에도 오리털 이불을 덮고 잤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 오리털 이불을 덮었지만 언젠가부터 35도 이상 올라가는 날씨가 여름동안 며칠씩 생기기 시작했고 무더위까지는 아니지만 나름의 독일스러운 여름을 경험하며 13년을 살다가 서울로 왔다.
나름의 독일스러움이라 표현한 이유는 우리처럼 몇 달씩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지도 않고 장마라고 하는 폭우가 내리지 않았다.
일조량이 부족하여 회색빛의 독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온난화로 중부 쪽에 살면서 오히려 맛있는 과일을 먹으며 찬란한 여름을 누렸었다.
하지만 사람의 생활은 회색빛에서 밝아졌지만 기후 변화로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는 건 피할 수 없으며 여기에 그들의 관심이 아주 높다.
독일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환경보호의 모델이 되고 있는 도시 프라이부르크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이 미디어에 자주 소개된다.
정당의 아이덴티티를 환경보호로 삼고 있는 녹색당의 40프로 이상이 거주하고 있으며 역대 시장들조차 녹색당 출신이었다.
지리적으로 스위스와 프랑스가 가까운 프라이부르크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시가지를 따라 흐르는 조그만 도랑인 <베힐레>를 보게 된다.
12세기경부터 상수와 소방용수의 용도로 만들어졌고 목조건물이 많았던 중세에는 소방용수의 역할을 크게 하였던 <베힐레>
점점 도시의 발전으로 어느 곳이든 소방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무용지물이 될뻔한 <베힐레>를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복구할 때에 그대로 남겨 두었다.
도로를 만들고 도시건설에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베힐레>가 남겨지기를 원하는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던 거다.
그리고 시민들이 원한만큼 자기 집 앞의 <베힐레>를 손수 청소하여 깨끗하게 유지하며 여러 가지 귀여운 장식품으로 꾸며지기도 하고 여름이면 발을 담그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이런 신선한 도시의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베힐레>에 발이 빠지면 프라이부르크의 시민과 결혼하게 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무더운 날씨가 많지 않지만 조그맣게 시가지를 따라 흐르는 <베힐레>가 도시의 온도를 낮추어 주는 역할까지 한다.
여기까지가 프라이부르크를 여행하는 사람이 느끼는 환경도시의 모습이다.
종전 후 도시의 80프로 이상이 파괴되었지만 중세도시의 모습을 기초로 재건되었고 다행히 중세성당은 피해를 입지 않아서 전쟁 전의 도시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도 이렇게 만들어진 중세도시 속에서 딸이랑 밤늦도록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의 추억 속에 과거의 모습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고, 가격으로 매기지 않고 살아온 흔적으로 도시를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예쁘고 소중하다.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의 환경수도로 도시운영이 환경 친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고 생태연구소를 비롯해서 에너지 연구기관이 들어서 있으며 에너지에 관련하여 여러 미래지향적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재생가능 에너지 시설은 타 지역에서 견학을 오기도 하는데 그중 주목을 끄는 것이 <보봉>이다.
프라이부르크의 보봉 구역은 도시 설계부터 시민들이 참여하여 주민 5000명이 거주하는 지속 가능한 마을을 만들기 즉 <포룸 보봉>이라는 시민 그룹을 형성하여 보봉에서 거주할 주민들과 이들이 선정한 건축가들이 함께 의견을 반영하여 만들어졌다.
지속가능한 토지 이용, 에너지 수급, 교통, 빗물 처리, 도시 공동체의 활성화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유럽의 주택구조가 단독 주택인 경우가 많은데도 주민 5000명을 수용하기 위해 단독 주택이 하나도 없으며 5층정도의 공동주택과 타운하우스로 되어있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콘셉트에 따라 연간 에너지 사용량도 최소로 정해놓았으며 변기 사용에 따른 물소비량을 절약하기 위해서 분뇨를 모아서 바이오 가스로 바뀌서 에너지를 생산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비행기 내의 화장실처럼 진공 수세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동네를 다녀보면 헬리오트롭이라는 자가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한 건물도 많이 있고 일반적인 도로보다 좁은 도로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차가 없는 거리 조성을 위한 것이다.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공동 주차 공간에 차를 주차를 하고 걸어서 보봉구역으로 들어와야 한다.
살다 보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닐 텐데도 주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협력으로 독일 내 대도시의 주민 참여형 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의 모범으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현대인의 생활은 바쁘기 마련이다.
한 번쯤 내지 일정기간 동안의 불편함은 캠프 온 걸로 생각하며 약속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이곳 보봉의 주민들은 우리와 동시대를 살면서도 불편함을 받아들이며 친환경적인 생활의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다.
(베를린 공대 박사 이필렬 교수님의 강의를 참고로 보봉지역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