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토크에 고마워질 줄이야
네덜란드는 한국에서 직항으로 13시간 떨어진 작은 나라다.
낯선 나라에 혼자 냅다 떨어져 우는 교환학생이 내가 될 줄이야.
아직 입주 날짜도 못 맞아 다른 도시를 '여행'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떠돌아다니는 3일은 사실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동양인을 보면 눈물 나게 반가운 경유지에서의 경계심부터
두려움에 시뮬레이션을 서른 번 했어도 어려웠던 공항의 유심칩과 교통카드 사기
보탬 없이 내 몸무게만한 짐들을 들고 기차를 타고, 에어비앤비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것부터,
한국에서는 잘만 찾던 초행길을 몇번씩 헤매 버스를 타지 못하는 것까지
혼자라는 것은 너무 버거웠다.
앞으로의 반년 간 어떻게 여기서 혼자 살아낸다는 건지 하루에도 눈물이 몇 번씩 났다.
고독을 즐긴다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땀 흘리는 외국인은 길을 알려주자는 fx언니들의 가사처럼,, 선량히 도와주는 시민들도 물론 있었지만
내가 길 한복판에서 가만히 해가 지도록 서있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당연히 없을 거라는 것이 느껴졌다.
앞으로 살 집에 입주한 후에도 너무나 막막한 나머지 타국으로 도망을 갔다.
친구를 만날 수 있는 하루를 빼면 거기서도, 거기까지 가는 길도 혼자인 건 마찬가지라 웃기지말 말이다
혼자 공항을 찾아가서 비행기를 타는 과정 동안
따뜻히 어느 딸의 가방에 빵을 넣어주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울컥하기도 하고
든든한 동행이 있는 친구, 부부들이 별 거 아닌데 그렇게 부러워지기도 했다.
타국에서 또 타국으로, 또 한 번 외부인이 되며 외로움은 끊이지 않았다.
파도가 한 번 지나간 지금에서 돌아볼 때 그 사이 나를 버텨내게 한 것이 있다면
짧은 Hi, 였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스몰토크였다.
처음 간 에어비앤비의 하우스키퍼는 한국에서 왔다는 내 말에
어색함 속에서도 본인이 한국에 가봤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에어비앤비 옆집에서 나오던 학생은 밝게 웃으며 Hi,한 후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나를 위해 가던 길을 다시 돌아와 도와주기까지 했다.
틸버그로 오는 길 만난 또다른 첫 학기 학생들은 나의 시작을 응원해주며 한 시간이나마 의지할 동료가 되어주었다.
아인트호벤 공항으로 가는 길 버스 정거장에서 만난 학생은 어디로 가냐며 말을 걸어주어 우리는 서로의 하루가 좋기를 응원했고
호스텔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짧은 Hi, 라도 하며 서로의 존재를 챙겨주거나
꽤 긴 대화 후에 하루 일과와 기분을 며칠 간 나누기도 했다.
이 곳에 스몰토크 문화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눈이 마주치면 혹시나 오해를 살까 피하기 바빴던 한국에서와 달리
가벼운 성의로 웃어주고 인사하는 이 곳이라 다행이었던 순간들이었다.
온전히 혼자라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지워준 것이 그 모든 짧은 인사였다.
별 거 아닌 인사이지만 며칠 간의 내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도록 해주었던 순간들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