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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Jun 10. 2024

이해 안 되는 우주: 절대 영도와 진공 속의 에너지


과거에는 뜨거운 무언가가 열을 전달한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다. ‘열’은 입자들의 운동에너지라는 것이 밝혀졌다. 쉽게 말해 온도가 높다는 것은 분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한 것이다. 그래서 루드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 1844~1906)은 온도는 분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 값이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뜨겁다고 느끼는 것은 빠르게 움직이는 입자들이 우리 피부에 부딪혀서 뜨겁거나 따가운 것이다. 뜨거운 물이나 불에 손이 닿으면 입자들의 과다한 운동에너지로 화상을 입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온도가 100도나 되는 사우나에서는 화상을 입지 않는다. 기체는 물에 비하여 분자 수가 적기 때문이다. 액체 상태일 때는 기체 상태일 때보다 700배 정도 분자 밀도가 높다. 따라서 같은 온도라도 사우나에서는 화상을 입지 않는다. 온도를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를 과학자들은 계속 실험을 했다. 2012년 과학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온도인 섭씨 4조 도를 만들어내서 기네스북에 올랐다. 


거꾸로 운동에너지가 영이 되면 가장 낮은 온도가 될 것이다. 운동에너지가 0이 되는 온도를 절대온도 0K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분자들이 완전히 멈춘다면 그때의 온도를 ‘절대 0도’라는 것이다. 섭씨온도로 나타내면 마이너스 273도이다. 이론상 이 온도 이하는 없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모든 입자들은 하이젠베르크(Werner K. Heisenberg, 1901~1976)의 불확정성 원리를 따라 속도가 0이 되면 운동량이 0이 된다. 그것이 온도의 하한선으로 섭씨 영하 273.15도로 0K로 표시한다. 그러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입자의 속도는 어떤 경우에도 0이 될 수 없어 모든 입자는 물리학적으로 0K가 될 수 없다. 하지만 0.1K, 0.01K, 0.001K과 같이 0K에 가까워질 수는 있다. 또한 이러한 온도에서 물질들은 종종 특이한 성질을 가지게 되고 이러한 성질을 연구하는 분야를 극저온 물리학(Cryogenics)이라 한다. 극저온 물리학은 1908년 카메를링 오너스(Kamerlingh Onnes, 1853~1926)가 헬륨을 액화시켜 온도를 4.2K으로 떨어트리는 데 성공하면서 시작하였다. 금속은 극저온에서 전기 저항이 사라지며 반자성을 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며 이 현상을 초전도 현상이라 명명하였다. 이 업적으로 191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극저온 물리학은 4.2K 이하의 온도를 연구하는 물리학을 의미하게 되었다.


1787년 기체의 부피와 온도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 샤를의 법칙(Charles's law)이 발견된 뒤로 가장 낮은 온도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오랜 세월 지속되었다. 샤를의 법칙은 외부와의 열 교환을 차단시킨 기체의 부피가 팽창하면 기체의 온도가 낮아진다는 법칙이다. 그러나 외부와의 열 교환 없이 부피를 늘리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제임스 줄(James Joule, 1818~1889)과 톰슨 켈빈(Thomson Kelvin, 1824~1907)은 용기를 반으로 나누어 한 쪽은 기체를 채우고 한쪽은 진공으로 한 다음 용기를 나눈 벽을 제거하여 기체를 팽창시켰다. 이를 줄-톰슨 팽창(Joule-Thomson expansion)이라 부르는데 80K 정도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다.


카를 폰 린데(Carl von Linde, 1842~1934)는 기체를 저온 고압으로 액화시킨 뒤 팽창시켜 기체로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줄-톰슨 효과(Joule-Thomson effect)에 의해 부피가 커지면서 온도가 낮아진다. 이를 이용한 극저온 경쟁이 또 나타났다. 지그문트 로블레프스키(Zygmunt Wroblewski, 1845~1888)가 산소를, 제임스 듀어(James Dewar, 1842~1923)는 수소를 액화시키면서 저온에 대한 기록은 계속 갱신되었다. 헤이커 오네스(Heike K. Onnes, 1853~1926)는 헬륨을 액화시키면서 1K 정도까지 온도를 낮추었다. 액체 헬륨을 증발시켜 온도를 낮추는 것은 0.3K 정도가 한계였고 더 낮은 온도를 얻기 위해 액체 헬륨-3과 액체 헬륨-4를 섞은 희석 냉동기 방법도 고안되었다. 희석 냉동기는 백만 분의 1(microkelvin, mK) 단위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식도 한계를 맞이하였고 온도의 본질인 입자의 운동 에너지를 낮추는 방법이 고안되기 시작하였다. 레이저 냉각은 레이저를 이용하여 냉각시키는 기술로 스티븐 추(Steven Chu), 클로드 코앙-타누지(Claude Cohen-Tannoudji)와 윌리엄 필립스(William Phillips)에 의해 고안되었다. 이들은 1997년  레이저로 원자를 냉각하여 포획하는 방법에 기여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스티븐 추는 실험에서 온도를 43 마이크로켈빈까지 낮추었다.


모든 입자들은 온도가 절대영도에 가까워지면 거의 정지 상태가 되며 독특한 양자현상을 보인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Bose–Einstein condensation, BEC)’은 1924년 아인슈타인에 의하여 처음 예측되었고, 사첸드라 내스 보스(Satyendra Nath Bose, 1894~1974)에 의해 논문으로 발표된 현상으로, 원자들의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되고 간격이 가까워지면 수많은 원자들이 마치 하나의 집단인 것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입자의 운동량 정보와 위치 정보는 반비례한다. 입자가 극저온에서 냉각돼 거의 정지에 가까우면 운동량이 명확해지는 반면 위치의 불확실성은 커진다. 위치의 불확실성이 입자들 사이의 거리보다 커지는 임계에 도달하면 입자끼리 서로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입자들이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이 응축물은 고체, 액체, 기체, 플라스마와는 다르다. 이론으로 예측한 이 응축은 1995년 극저온 상태의 중성 원자들을 통해 처음 관찰됐다. 이 발견에 공헌한 물리학자 3명은 200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2024년 전기적 극성을 가진 쌍극 성 분자를 극저온 상태로 만들어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상태의 물질을 세계 최초로 실험적으로 구현했다. 나트륨(Na)과 세슘(Cs)이 결합한 분자들을 약 5nK(나노캘빈, 10억분의 1K)에서 ‘응축’으로 만드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 것이다. 만들어진 응축물은 5nK에서 2초간 유지됐다. 분자 응축물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무적인 수준이다. 원자로 만든 응축물은 수십 초 유지할 수 있다. 시료를 유지하는 수명이 확보돼야 추가 실험이나 응용이 가능하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4-07492-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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