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는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구가 늘어나자 인간의 미래를 걱정했다. 19세기 이전 지구의 적정인구는 10억 명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인구는 1900년 15억, 1960년 30억, 1999년 60억, 2014년 72억으로 계속 늘었다. 21세기의 인구는 맬서스가『인구론』에서 경고했던 적정 인구 수에 비하면 인간을 여러 번 멸망시키고도 남을 규모다. 인간은 역사 이래 최대 인구가 살고 있다. 맬서스의 걱정을 추세 연장의 오류라고 부른다. 추세 연장의 오류는 이전부터 그래 왔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고의 함정이다. 추세 연장이 틀리는 것은 가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저주’도 그렇다. 맬서스 함정에서 벗어난 지금, 인류는 거꾸로 ‘장수의 함정’에 빠졌다. 평균 수명이 지난 2백여 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너무 오래 살아서 병으로 고통 받고 일자리나 재산이 없는 노년층은 먹고사는 문제가 보통이 아니다.
의료나 간호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생존기간을 건강기대수명(healthy life expectancy, HLE)이라고 한다. 상위 층과 하위 층 간 건강 불평등 현상은 이미 알려졌고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2016년 연구에서는 부유층이 빈곤층보다 수명이 10년~15년 길다는 연구가 나왔다. 2018년에는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평균 10년 가까이 수명이 길다는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2020년에도 남성과 여성, 영국과 미국, 그리고 전 연령 모두 지위가 높을수록 건강기대수명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그룹이 낮은 그룹에 비해 수명이 5~6년 정도 길었다. 특히 부유층은 빈곤층 대비 건강기대수명이 약 9년이 더 길다.
가난하면 살아서도 건강이 나쁘고 나이 들면 치매도 빨리 온다. 치매도 불평등하다. 저소득일수록 치매가 생길 확률이 더 높고, 심지어 더 빨리 발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나이가 많아들수록 격차는 줄어들지만 차이는 크다. 60세 미만은 무려 27배나 차이가 났다. 60~64세는 10배, 65~69세는 4배, 70~74세는 2.54배, 75~79세 1.51배, 85세 이상 1.32배이다. 젊을수록 환경의 영향이 크고 나이가 들수록 노화의 영향을 더 받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수준뿐만이 아니다. 교육 수준과 직업, 부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도 노년기의 인지 장애나 치매 위험에 영향을 미친다. 영국에서 10년 동안 50세 이상 약 9천명을 조사한 결과이다. 고등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경도 인지장애를 겪을 위험이 43%, 부유층은 26% 낮았다. 가난한 사람은 경도 인지장애에서 건강한 인지 상태로 돌아갈 확률이 56%, 고등교육 수준이 높거나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81% 더 높았다. 이 연구는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로 특정 사회경제적 요인이 인지에 미치는 인과관계를 밝힌 것은 아니다.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몇 가지 있다. 교육 수준이 높고, 지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뇌 활동이 많아 뇌 건강에 유리하다. 또한, 건강관리를 잘 하고 좋은 음식을 먹는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8-024-74125-w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경제협력기구 국가 30여 국가 중 지니계수를 기준으로 불평등지수가 7번째로 높다. 선진국 중에서는 미국이 가장 불평등지수가 높다. 그리고 미국과 더불어 우리나라는 점점 더 악화되는 추세이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악화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구호만 다를 뿐이다. 인간을 위한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