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진화가 아주 느린 속도로 꾸준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염색체 변이에 의한 빠른 종 분화 같은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진화적 변화는 한 세대 안에서 관찰하기에는 너무 느리다. 따라서 진화생물학자는 수십, 수백, 심지어 수천 세대에 걸쳐 누적된 뚜렷한 진화적 변화를 주로 연구한다. 한 세대 안에서는 쉽게 식별할 수 없는 작은 변화가 오랜 세월 누적되면 큰 진화적 차이를 만들어 낸다. 직립보행도 땅과 나무를 오가며 살던 우리의 조상이 수만 년, 수십만 년에 걸쳐 조금씩 더 땅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와 함께 두발걷기를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작은 형태적 변화가 서서히 나타나는 느리고 긴 영화를 상상하는 것이 진화의 실제 모습에 훨씬 가깝다. 이러한 점진적 진화론(gradualism)은 진화에는 비약이 없다는 것이다. 동식물뿐만 아니라 단세포 동물조차도 몸의 구조가 너무 복잡하여 어느 한 부분의 급작스런 변형을 간단히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점진적 진화론은 다윈주의가 가장 빈번히 공격당하는 취약지대이다. 창조론자는 이에 의하여 진화론을 틀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캄브리아기 대폭발 이후 급격하게 탄생한 생명체와 그것도 단세포 생물이 아니라 복잡한 생명체가 탄생한 것은 다윈의 진화론을 딜레마에 빠지게 했다.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진화론’은 이것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캄브리아기 이전부터 이미 진화가 일어났다는 증거가 발견되는 등 이미 이것은 입증되었다. 또한 화석 증거도 부족하였다. 많은 화석이 발견되었지만 진화 중간단계의 화석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하버드대학 진화생물학자인 고 스티븐 제이 굴드 교수는 ‘단속평형이론’을 체계화했다. 생물은 오랜 세월 거의 변하지 않다가, 환경이 변화가 급작스럽게 발생하면 변이나 종의 분화가 일어난다는 주장이다. 생태계가 안정된 평형 상태에서는 거의 진화하지 않다가 빙하기 등으로 평형 상태가 깨지면 갑작스럽게 소멸하거나 진화의 도약이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캄브리아 폭발도 그것이다. 또한 화석이 만들어질 확률과 이를 발견할 가능성을 감안하면 오히려 현재의 증거가 놀랍다. 창조과학계의 주장은 ‘헛소리’이자 사실을 왜곡한 변조이지만 늘 재미로 설명에 보탤 뿐이다. 헛소리와 거짓말쟁이는 다르다. 헛소리를 하는 사람은 진실여부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주장만 한다. 반면 거짓말쟁이는 사실여부를 의식하고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안다. 차라리 거짓말쟁이가 헛소리꾼보다 ‘좋은’ 사람이다.
진화는 서서히 이루어지지만은 않는다. 기후와 환경이 안정적인 시기에는 종이 서서히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는 종이 급격한 변화를 겪을 수 있다. 오늘날 항생제의 사용에 적응하면서 박테리아들이 진화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항생제가 널리 사용되면서 항생제에 내성이 강한 박테리아가 점점 더 ‘건강한’ 새끼를 낳는다. 몇 세대 만에 이들은 다른 종들보다 훨씬 우월한 종이 된다. 이런 방식으로 항생제에 내성이 강한 새로운 종의 박테리아가 나타났다. 오늘날 이러한 사실은 진화에서 평범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지구의 역사는 엄청난 변화의 시대와 안정적 시기가 혼재하였다.
섬에 오래 고립된 동물은 종종 거대화되거나 또는 왜소화된다. 인도네시아 코모도 섬에서는 거대화가 진행돼 파충류 최대 포식자인 코모도왕도마뱀이 출현했다. 반면 시칠리아의 왜소한 코끼리는 키 2미터 무게 1.7톤이다. 현생 아프리카코끼리는 키 3~4미터 무게 5~6톤까지 자란다. 유전자 분석 결과 시칠리아 코끼리의 직접 조상은 가장 큰 고대 코끼리의 하나인 곧은 엄니 코끼리로 키 3.7미터 무게 10톤이었다. 유럽에서 살았던 가장 큰 종류의 코끼리였던 곧은 엄니 코끼리가 지중해의 섬 시칠리아에서 불과 40세대 만에 키는 절반으로 체중은 85%가 줄어들었다. 빙하기 때 시칠리아에 온 거대 코끼리는 간빙기 때 해수면이 상승해 섬에 고립되면서 7만~20만 년 전부터 소형화되기 시작했다. 섬 환경은 일반적으로 육지보다 자원이 부족해 먹이를 적게 먹고 일찍 성숙해 번식하는 개체가 더 많은 자손을 남기게 된다. 이런 적응 결과 거대 코끼리는 점점 작은 형태로 진화했다. 시칠리아에는 2종류의 소형 코끼리가 출현했는데 가장 작은 종은 키 1미터 무게 300킬로그램의 조랑말 크기였다.
시칠리아 섬의 동굴에서 발견된 멸종한 작은 키 코끼리의 두개골 바위 뼈에서 처음으로 DNA를 추출해 분석했다. 유기물이 쉽게 분해하는 덥고 습한 지역에서 유골의 DNA를 추출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5만~17만5000년 전에 살았던 이 코끼리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를 해독해 유럽 대륙의 거대 코끼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왜소화했는지 계산했다. 왜소화 속도는 매우 빨랐다. 코끼리의 크기는 세대마다 200킬로그램씩 키는 4cm씩 줄어 40세대 안에 거대한 곧은 엄니 코끼리에 견줘 덩치가 15%인 소형 코끼리가 됐다. 작은 키 코끼리는 지중해의 여러 섬에 분포했지만 1만9000년 전에 모두 멸종했다.
1만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진화한 것 어류도 있다. 마지막 빙하기(Last Glacial Period)는 약 115,000년 전에 시작되어 기원전 약 9,700년 전에 끝났다. 발트 해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 약 8000년 전부터 생긴 바다로 대서양보다 염분이 최대 5~6% 수준으로 낮다. 이러한 바다에서는 여기에 맞는 제한된 어류만 살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물고기를 잡아먹는 청어이다. 일반적으로 발트 해에 사는 청어는 플랑크톤을 먹고산다. 발트 해에서 이러한 청어와는 유전적으로 다르고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는 두 배나 덩치 큰 청어가 발견되었다. 발트 해의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여 물고기를 잡아먹도록 진화한 발트 해 청어가 고등어와 참치와 같은 포식성 어류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커진 것으로 보인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4-55216-8
수십 년 만에 대형동물이 진화한 것도 있다. 코끼리는 물을 구하기 위해 땅을 파거나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무껍질을 벗길 때 상아를 이용한다. 수컷이 암컷을 놓고 싸움을 벌일 때도 큰 상아를 가지면 유리하다. 따라서 큰 상아가 있는 개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상아를 가진 코끼리가 수십 년 간 밀렵꾼들의 표적이 되면서 코끼리들이 상아가 없는 종으로 진화되고 있다.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의 경우 과거에는 상아 없는 코끼리가 전체의 4% 미만이었지만 암컷 코끼리의 3분의 1 정도가 상아 없이 태어나고 상아를 가지고 있어도 매우 작았다. 1970년대 말부터 16년 동안의 내전으로 코끼리의 90%가 밀렵으로 사라진 데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1992년 종전 후 태어난 암컷 코끼리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밀렵꾼이 큰 상아를 가진 코끼리를 밀렵하다 보니 상아가 없거나 작았던 코끼리가 밀렵에서 살아남아 짝짓기를 하여 그 새끼들이 유전자를 물려받아 상아가 없는 코끼리가 점점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의 밀렵으로 기존의 자연 선택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 셈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도 코끼리 국립공원도 2000년대 초반부터 암컷 코끼리 가운데 98% 이상이 상아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인간에 의한 선택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이것도 자연선택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이 자연선택의 주체가 된 셈이다. 인간에 의한 자연선택은 가축화, 선택적 식물재배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인간이 진화의 방향과 속도에 큰 영향을 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