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과 수학과학 능력
기원전 1세기경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기원전 106~기원전 43)는 원고를 전부 외어서 연설했다고 한다. 짧은 것이 라틴어로 약 2만1천자가 넘었다고 하니 놀라운 기억력이다.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특정 날짜에 일어난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그날 날씨와 뉴스, 그리고 그때 느낀 감정까지 기억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밖에도 수십만 명 규모 도시의 지도를 외우고, 책을 한두 번 읽고도 그 내용을 거의 모두 암기하는 등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놀라운 기억력과 암기능력을 가진 사람이 수리과학에도 뛰어나다면 학습능력이 배가 될 것이다. 기억력과 암기능력이 좋으면 무슨 일을 하던지 유리하다. 그러나 기억력과 암기력은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데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지능과는 직접적인 비례성은 없어 보인다. 2000년대 초 세계 기억력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 1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이점이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이들의 지능은 일반인과 비슷했고 뇌 구조에도 특별한 차이가 없었다. 기억력이 비상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지능이 더 높지도 않았다. 다만 이들이 기억 과제를 처리할 때 두정 엽, 해마 같은 특정 뇌 부위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위는 시각 정보 처리나 공간 학습이 이뤄지는 동안에 특히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진 뇌 영역이다.
19세기 독일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는 장기기억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 망각곡선을 제안했다. 인간의 뇌는 모든 정보를 다 기억하면 중요한 정보에 집중할 수가 없다. 무언가는 기억하고 무언가는 버린다. 그래서 천재들은 자기 분야외의 것은 건망증이 심하다. 대부분 자신의 관심사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망증이 심했다고 한다. 오직 자신의 연구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퇴근할 때 자기 집 가는 길을 몰라 다른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뉴턴은 밥 먹다가 갑자기 일어나 사라지기도 했다. 우리의 뇌는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버리고 필요한 정보는 유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기억과 행동을 조절하는 대뇌 측두엽의 해마(Hippocampus)는 정보가 들어오면 중요하고 유용한 것은 저장하고 불필요한 것은 버린다. 불필요한 세부 사항이 아니라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따라서 건망증은 중요한 순간에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일종의 ‘포기’이며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 중요한 순간에 훨씬 똑똑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 중요한 순간에 훨씬 똑똑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영재나 수재는 기억력보다는 수리능력과 관련성이 더 크다.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사실로 확인되었다. 미국의 수학영재연구 프로젝트(Study of Mathematically Precocious Youth, SMPY)는 1968년에 처음으로 기획되었는데, 존스홉킨스대학 교수였던 줄리언 스탠리(Julian C. Stanley, 1918~2005)가 학습에 도움을 주는 적당한 학교를 찾지 못하고 있던 12살짜리 한 수학 천재 소년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많은 영재들이 마땅한 교육기관을 찾지 못하는 문제에 주목하였고 1971년 이 프로젝트가 출범되고 영재센터를 세우면서 영재 발굴에 나섰다.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시작한 영재센터는 다른 대학으로도 확대됐다. <네이처>는 2016년 이 프로젝트가 45년간 일궈온 영재 연구의 발자취를 조망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에 의하면 어린 시절 수학 분야의 천재성을 가진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각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사례가 많았다. 반면 지능지수(IQ)는 더 이상 영재 기준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루이스 터먼(Lewis Terman) 스탠포드 대학 교수 연구진은 1921년 IQ가 높은 10대를 발굴해 35년간 추적 조사했더니 극히 그중에 소수만 과학자가 됐다. 오히려 터먼 교수가 제시한 기준에 미치지 않아 연구에서 제외된 인물들 중에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윌리엄 쇼클리, 196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루이스 앨버레즈가 바로 그들이다. 수리능력은 지적능력 중 가장 핵심적인 능력이며 학문에서 영재성과 천재성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확인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