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와 로마의 3대 역병의 경고
유라시아 대륙의 스텝지대 유목민들은 뚜껑을 꽉 닫지 않은 병 안에서 떠다니는 무수한 미립자에 비유할 수 있다. 어느 한 부분에 가해진 압력은 순식간에 전체로 파급된다. 모든 유목민 집단은 자신들이 독점하던 목초지에서 추방되면 아예 사라지거나, 무력으로 인근 집단의 목초지를 재빨리 빼앗았다. 그래서 목초지 관할권에 어떤 중대한 혼란이 생기면, 그 여파가 몇 개월 만에 초원의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파급되었다. 한 집단이 인근 집단을 밀어내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쫓겨 난 최약체 집단은 사멸하거나, 스텝지대의 북쪽과 서쪽에 위치한 살기 힘든 삼림지대로 도망치거나, 문명세계의 방위선을 뚫고 남하하여 농경민의 지배자가 되었다.
유목민의 이동과 침략은 기후변화와 큰 관련이 있다. 기원 전후(기원전 300~기원후 300) 농경 국가가 확대되면서 경작지는 늘고 숲은 줄고 관개가 확대됨에 따라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방출되어 온난한 기후를 만들었다. 이후 로마제국과 한 제국 등이 이룬 문명은 교류를 촉진하여 유목민의 이동, 질병의 창궐 등으로 인구가 크게 감소하고 경작지가 줄고 숲이 늘면서 한랭기가 시작되었다. 중세 초기의 소 빙기에는 흉노 혹은 훈족과 게르만족 등이 침입하고 천연두 같은 전염병이 돌아 수천만 명이 죽었고, 로마 제국과 한 제국이 멸망했다.
‘창자는 끊임없는 설사로 녹아내리고, 구토는 체력을 고갈시키며 눈은 충혈 되어 피로 물든다.’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아누스(Cyprian, 200?~258)가 당시의 역병을 묘사한 것이다. 키프리아누스 역병은 249년에서 262년까지 로마 제국 전역을 휩쓸며 수백만 명을 사지로 내몰았다. 2~3세기 로마 제국을 뒤흔든 안토니우스 역병(The Antonine Plague, 165~180년)과 키프리아누스 역병(Plague of Cyprian, 249~262년)은 해수면 온도가 크게 낮아졌을 때 발생했다. 안토니우스 역병의 병명은 철인 황제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재위 161~180년)가 속한 가문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천연두 혹은 홍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180년 아우렐리우스가 사망에 이른 원인 또한 아마도 이 안토니우수 역병의 후유증일 거라는 추측이 많다. 아우렐리우스가『명상록』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깊이 성찰한 데에는, 그가 직접 겪어야 했던 역병의 참혹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중앙일보, 2026.1.30.).
‘로마 3대 역병’이라 불리는 전염병은 낮은 바닷물 온도와 관련 있다. 이들 모두가 기온 저하에 따른 식량위기로부터 촉발되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의 국경에 자주 출몰한 이유도 그렇다. 기온 저하에 따른 흉년으로 먹을 것이 부족해졌기 때문이었다. 전쟁 빈도는 치솟았고 제대로 먹지 못한 서민층을 중심으로 역병은 빠르게 퍼져나갔다(중앙일보, 2026.1.30.). 결국 온난화로 타격을 입으면 반대로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식량이 부족해지고 질병이 창궐할 수 있다. 온난화의 경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