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안전한 거리감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방식
어릴 적부터 게임을 많이 한 편이었다. RPG도 하고 웹게임도 하고 스팀 게임 콘솔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건 RPG 온라인 게임이다. rpg는 다양한 매력이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여럿이 협동해서 성장한다는 점이다.
정말 매력적이면서도 또 부담스러운 길드 생활, 게임 내 인간관계. 필자는 이것 때문에 사람들을 멀리하는 넷나베이길 선택 했다.
온라인 게임의 인간관계는 미묘하다. 현실의 지인보다 자주 보고 자주 이야기하지만 거리감이 있다. 서로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며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일까? 필요할 때 찾는 인스턴트 관계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여자임을 공공연하게 밝힌다면 상당히 귀찮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가볍게는 이유 없이 욕설이나 성희롱을 듣고 본 적도 없는 남자들이 선물 공세를 하며 들이댄다. 질이 나쁜 경우는 온라인 스토커로 돌변하기도 한다. 참 많았었다.
때문에 많은 여성 유저들이 남성스러운 닉네임을 짓고 거친 말투로 말하거나 솔로잉, 혹은 지인들과의 플레이를 한다. 여성들만 모인 길드도 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야생의 땅, 듀랑고를 들어보았나? 오픈 후 엄청난 인기를 누리다 급격하게 몰락한 초라한 공룡 게임은 길드 생활의 정수이다. 캐릭터의 스킬 포인트 제한이 있기에 사실상 하나의 직업만 가질 수 있으며 여러 캐릭터를 키우지 않는 이상 절대 혼자서 모든 아이템을 마련할 수 없다.
여러 캐릭터를 키우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소모되기에 부족(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유저들은 경매장을 이용한다. 하지만 좋은 아이템은 경매장에 풀리지 않는다. 유저 수가 줄어들수록 그런 성향이 심해졌다.
길드에 매여있고 싶진 않았다. 현실에서도 이미 충분히 친구가 많은데 왜 리스크를 감수하고 게임에서 애매한 지인을 만들어야 할까. 그런 경험은 어릴 때로 충분했다. 하지만 솔로잉의 고독함을 견디느니 차라리 스팀 게임 싱글 플레이를 하는 게 낫다.
결국 필자는 차선책으로 솔플 부족을 만들었다. 부족 시스템의 기본적인 혜택을 받기 위한 방식. 어딘가에서 본 아이디어였다. 채팅방도 없었고 의무도 권리도 없었다. 부족원의 이름, 신상, 연락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받아갈 수 없었다. 접속 주기만 지키면 되었고 그게 다였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호응했다. 게임은 열심히 하고 싶지만 부족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남성, 여성 유저는 정말 많았다.
사람이란 것이 이상하게도 친해지고 싶지 않아서 모인 존재들임에도 모여있으니 친분이란 게 생겨났다. 남는 자원을 나누어주는 부족원들. 어느 날부터 나누는 인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옆집 사람에게 머쓱함을 이기지 못하고 인사하다 가벼운 떡을
선물하게 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고 적당히 가져갔다. 대부분의 부족들이 공산주의, 혹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모방해 돌아갔지만 이곳만큼은 기묘하게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부족 땅에는 단지 상자 하나만 있었고 나중에는 휴식처와 생산대만 생겼을 뿐이다.
사냥꾼은 남는 뼈와 가죽을 두고 가고 그걸 요리사가 요리한다. 대장장이와 재봉사는 그걸로 작품을 만들어 팔고 일부는 상자에 넣어놓는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받은 만큼 갚기 위해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 개인과 개인으로 엮인 집단이 되고 어느새 west서버에서 제일 강한 부족이 되어있었다. 시골 서버 1등이지만.
여전히 서로를 몰랐다. 나이와 학생 신분을 밝혔지만 성별을 말하지 않았다. 사실 말할 수도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내밀한 이야기까지 하는 사이가 된 것은 서로에게 스며든 것일 테다.
멀면서도 가까운 사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졌지만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저 게임이 질렸고 시험기간이라 접었다. 그 후 듀랑고는 서비스 종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묘했던 나날들을 잊을 수가 없고 가끔은 추억하고는 합니다. 적당히 멀면서도 가까운 관계는 인간을 좋아하지만 불신하고 넓고 얕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저한테 딱이었어요.
만약 여러분도 자유롭고 구속되지 않은 관계를 좋아한다면 라이트한 길드 생활 한번 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바로 그런 곳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