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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멈블비 Oct 23. 2024

나의 자연

식물을 키우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그들이 나와 전혀 다른 시간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시계를 보며 하루를 계획하고, 휴대폰 알람에 맞춰 일어나고, 마감에 쫓겨 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식물들은 그런 속박 없이 쫓김이 없이 할수 있는 성장을 할수 있는 만큼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다. 인간이 많은 것을 바꾸어 와서 진정한 자연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있을 지경에도, 식물이 우리에게 여전히 자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절로 그러하다.

내 책상 위 작은 화분에서 자라는 레몬나무 잎사귀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잎은 언제부터 자랐을까? 언제까지 자랄 수 있을까? 나는 그저 물을 주고, 일조량을 고려해 자리를 옮겨주며 레몬나무의 상태를 확인한다. 언제까지고 새싹일 것만 같았던 잎사귀가 미세한 변화들이 쌓여 어느 순간 레몬 나무로 인지된다. 성장을 하고 있을 때, 얼마만큼 성장해 왔는 지는 잊기 쉽다. 우리가 목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가 다가오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초조해지고 조급해지곤 한다. 그러나 식물을 보면 성장은 단지 결과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레몬나무가 자라는 동안 나는 그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들이 존재하는 속도는 나의 시간과 전혀 다르게 흘렀다. 물론, 다른 식물들의 시간도 다르게 흘렀다. 60cm 이상 급성장한 고사리와 한뼘을 채 자라지 않은 커피나무, 결국 열매를 크게 키우지 못하고 말라버린 참외가 그러하다. 모두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자연을 살았다.

그래서 나의 자연스러움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게 된다. 성급함과 불안함, 주책맞음 같은 것도 나의 자연스러움일 수 있을까?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에 카다란 괴리가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릴 적 흔히 다른사람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느끼던 답답함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었다. 나는 내가 생각보다 진지해보이고, 생각보다 주책맞고, 생각보다 사람다움을 알게 되었다. 예상보다 자주 멘붕을 겪으며 회복하기 힘들어하다가도, 별다른 이유없이 어이없게 금방 희망에 부풀기도 한다. 하루에 수십번씩 마음을 바꾸기도 하고, 작은 일에 집착해서 별 것 아닌 일을 크게 만든 적도 있다. 많은 것이 어설프고, 어른답지 못했고, 참 겁이 많았다.. 가 아니라 지금도 그러하다.

많은 책을 읽고 말을 들으며, 우리는 자연히 우리의 주체를 이야기 안에서 상상하게 된다. 어떠한 것이 옳은 일인가 혹은 이러한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상상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을 확인하게 될 때, 어른은 후회를 하거나 배움을 구하거나, 자신을 바꿀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배운 가치관이나 사회적 포지션을 다시금 엎치락 뒤치락 정리해 보면서 행동으로 증명할 수 있었을 때 나는 성장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나의 자연스러움은 시끄럽고 게걸스럽고, 실수투성이인, 어딘가 조금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는 사람다움이다.

내 책상 위 레몬나무는 실수 따위는 모르는 것처럼 향긋하다. 고요해 보이지만 사실은 빛이 너무 적었을 때, 너무 뜨거웠을 때, 물이 너무 많았을 때 혹은 가물었을 때를 견뎌내고 그곳에 있는 것이다. 나도 항상 자연스럽고 싶었다. 그런데 다른 이의 눈으로 보는 자연스러움을 생각할 때는 그렇게 되기 힘들었던 것 같다. 나의 자연스러움이 능숙함이나 성숙함이 아니라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의 시간을 살기 때문에 생기는 온갖 변화와 당혹스러움이, 모두 나의 자연스러움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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