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자의 서랍 Jun 20. 2022

엄마가 밉다.

나는 이제 그만 가벼워지고 싶다.


내 모든 것은 기승전 엄마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엄마 때문이다. 

내가 항상 불안해하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상대의 기분을 맞추려 눈치를 보는 사람인 것도 엄마 때문이다. 

내가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내가 밤마다 깊게 잠들지 못하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나에게 10대의 추억이 없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지금까지 마음을 나누는 친구 하나 없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자꾸만 남들에게 잘 보이려 과하게 애쓰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진심인 칭찬에 어색해하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때를 놓치고 아들보다 어린 친구들과 공부하느라 힘들었던 것도 엄마 때문이다. 

내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혼자된 것도 엄마 때문이다. 

엄마처럼 늙어 갈까 봐 지금부터 걱정인 것도 엄마 때문이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내 늙은 미래가 불안한 것도 엄마 때문이다.

어릴 적 생각만 하면 가슴이 울컥하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부당한 일에도 따지지 못하고 참기만 하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의무는 다 하지만 권리는 주장하지 못하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행복한 기억 하나 없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나에게는 엄격하지만 남들에게는 관대한 것도 엄마 때문이다. 

비 오는 날 생각나는 첫사랑 경험 하나 없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도 엄마 때문이다. 

자존감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 것도 엄마 때문이다.  

과거에 매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에 늦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엄마 때문이다. 

나는 못할 거라는 생각에 포기해 버린 많은 것들도 엄마 때문이다. 

많은 지난날들이 후회로 가득한 것도 엄마 때문이다.


그중 내가 제일 견딜 수 없는 것은, 환갑이 지난 지금까지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때문이다.




 “나는 니 엄마잖니?”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병원비도 병간호도 오롯이 내 몫이다. '혀를 깨물고 죽어도 네 덕은 안 보고 살 거라고' 내 귀에 딱지가 앉게 말했던 엄마는 지금, 나의 보살핌이 딸이니까 당연한 것이라 한다. 나는 네 엄마라면서... 귀한 아들은 멀리 살아서, 작은 딸은 직장에 다녀서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까...

    

        

병원에서의 어느 날이었다. 화장실에 가려는 엄마가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내가 밤이면 덮고 자는 이불이 발에 걸리자 짜증스럽게 그걸 걷어차는 것이다. 이불은 힘없이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그때 그 이불은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었다. 엄마를 부축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하얀 백발의 엄마 머리채를 움켜잡고 침대 모서리에 짓찧고 싶었다.

     

“나한테 평생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뭔데?”  

   

나는 순간 실제상황인지 상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지금도 엄마의 모든 것이 밉다.

           

싱겁게 먹어야 하는데, 병원에서 나오는 죽에 간장을 들이부어서 시커먼 죽을 만들어 먹는 것도 밉다. 

꼭 식사시간이면 가래 끓는 소리를 하며 기침을 해서 병실 사람들 눈치 보게 만드는 것도 밉다.  

보조기구에 의지해 걸음 연습을 하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뒷모습도 밉다. 

양치를 하는 동안 오랫동안 물을 틀어 놓는 오랜 버릇도 밉다. 

그렇게 해야 편하다면서 엉덩이에 욕창이 생기도록 침대에 앉은 채로 밥 먹고 잠자는 것도 밉다. 

잘 때면 요란스레 코를 골면서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도 밉다. 

자꾸 남들 흉을 보는 것도 밉다. 

사소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밉다. 

마음에 안 들면 이제 그만 집으로 간다고 생떼를 쓰는 것도 밉다. 

병원비 걱정을 하는 척하면서 의사에게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밉다. 

남들에게 말할 때는 가식적인 말투가 되는 것도 밉다. 

남들보다 경우 바르고 겸손한 척하는 것도 밉다. 

남편 복이 없어서 고생은 혼자 한 것처럼 과장해서 말하는 것도 밉다. 

말을 많이 하는 것도 밉다. 

그 말의 반 이상이 자기 자랑인 것도 밉다. 

상스럽고 천박한 표현을 하면서 말하는 것도 밉다. 

자신의 말에 취해서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밉다. 

참을성이 많다면서 엄살을 부리는 것도 밉다. 

모든 일에 남 탓을 하는 것도 밉다. 

과도한 자기 연민에 빠져 피해자인 척하는 것도 밉다. 

스스로를 항상 과대평가하는 것도 밉다. 

시간으로 변하는 변덕스러움도 밉다.  

아프다고 아기처럼 투정 부리는 것도 밉다.

지금도 '수 틀리면 죽어 버린다'라고 협박하는 것도 밉다.


그중 가장 큰 미움은, 엄마를 미워하는 나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다.    




(엄마와 병원에 있으면서 충동적으로 쓰는 글입니다. 지울 수도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