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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서랍 Apr 20. 2023

그건 엄마눈에만 보이는 거예요.



요즘 엄마는 헛것을 보는 일이 잦다. 헛것은 엄마가 보고 스트레스는 가족 모두가 받는다.


며칠전일이다. 엄마가 전화를 했다. 집에 모르는 젊은 남자가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 엄마에게 가봐야 하는지 안 가봐도 되는지를 통화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누군가 집에 와 있을 리가 없다. 엄마가 또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가봐도 소용없지만 착한 나는 가보기로 한다.


당연하게도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엄마가 남자가 있다고 가리킨 곳은 도무지 사람이 들어갈 틈이라고는 없는 옷장과 벽사이의 좁은 공간이었다. 무기가 될 만한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엄마 손에는 관광지에서 파는 대나무로 만든 '효자손'이 들려있었다.


나는 엄마의 효자손을 빼앗아 벽과 옷장 사이의 좁은 틈을 휘휘 저었다.


"여기? 여기? 이거 봐~ 아무것도 없잖아"







엄마가 헛것을 보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다. 어느 날은 남자 혼자였다가 또 어느 날은 한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와 있다고 한다. 그들에 대한 엄마의 묘사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남자는 30대쯤인데 머리가 길고 모자를 썼으며 체크무늬가 들어간 긴 웃옷을 입었다'는 식이다. 그들은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엄마를 바라보기만 한단다.


엄마와 함께 사는 동생은 엄마가 식탁 위에 앉아 있다는 그들을 향해 진지하고 깍듯하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엄마가 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만 쓰는 특유의 어색한 표준말로 식탁을 향해 말하더란다.


"무슨 일로 우리 집에 와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우리 집은 부자두 아니구 그래서 가진 돈 두 없어요. 내가 통장을 보여줄까요? 어디루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이제 그만 가보셔요~" 


낮에 혼자 VR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일까 싶어 동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기는 것은 내가 착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늙지도 병들지도 않을 것을 보장받은 사람처럼 평생을 자신만만하게 식구들 피를 말리던 엄마였음을 생각하면 동정을 가질 여지도 없다. 가혹한 질병이라는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지난날이 없던 것이 되지는 않는다.


병원에서 이것저것 검사를 했고 약의 부작용일 수 있으므로 일단 약을 조절해 써보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엄마는 무엇이든 자신의 생각이 옳고 틀림이 없다는 강한 신념을 젊었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치매판정 이후에는 더 심해졌다. 치매란 장점은 없애고 단점만 부각하는 병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약을 잘못 먹어 점심약만 잔뜩 남아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약사가 약을 잘못 준 것이라 말한다. 은행에서 비밀번호를 잊어 출금을 못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비밀번호 같은 것은 없었다고 우긴다. 이러한 일들이 더 난감한 것은,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확인하러 가자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는 것이다. 헛것이 보일 때도 마찬가지다.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전화를 한다. 빨리 와서 그 사람들 좀 내보내던가 경찰에 신고하라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여기저기 아픈 자신이 헛 볼 수도 있다는 것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 니들 정말 너무하는 거 아녀? 경찰에 신고를 해주던가  얼른 와서 쫓아 내주던가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내 눈에만 보이는 거라구 나를 정신병자 대하듯 하다니.. 참~"






나는 치매에 걸린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태어나서부터 죽으라고 윗목에 밀쳐놨었다는 말과, 내가 죽으면 잔치하며 춤출 거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자랐다. 아플 때에도 따뜻하게 이마 한 번 짚어준 적 없다. 지금 같으면 이웃에서 '아동학대'로 신고가 들어갔을지 모를 정도로 내게 가혹하게 대했다. 나는 자라면서 엄마로부터 학습된 것이 없어서 나잇값도 못하고 매사에 서툴고 어색하다. 모든 것을 글로 배워서다. 사랑을 주거나 혹은 받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아픈 엄마에게 쉽게 지치는 것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아직 배우지 못한 까닭이다.


얼마 전에는 '독거어르신 실태조사'라면서 주민센터에서 다녀갔다. 나도 이제 보호자가 필요한 어르신 나이가 되었다. 나간 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은 리석은 일인 줄 안다. 그리고 이 나이가 되도록 엄마로 인한 스트레스로 약까지 먹고 있는 내가 참으로 딱하다. 이제 그만 이전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에 두서가 없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계속 되풀이하는 엄마의 긴 전화를 방금 끊었다. 휘저어진 가슴속의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지금 이 글을 쓴 것을 이불을 차면서 후회할지 모른다. 아픈 엄마에게 잘 하지 못하는 것이 자랑은 아니므로..



이미지출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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