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에 도착한 지 두 달이 넘었다. 여전히 처리되지 않은 행정절차로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삶을 꾸려나가는 중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걱정하는 '밥'은 이제 잘 먹는다. 장도 고루고루 야채도 사고 과일도 사고 고기도 산다.(row meat은 비싸서 언제나 가공육만을 담지만 어쨌든) 계란과 우유도 가끔 사고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LAYS감자칩도 일주일에 세 번은 사 먹고 있다.
무슨 슈퍼마켓에서는 클레멘타인(귤 종류의 과일)이 저렴하고 어떤 편의점에서 도넛을 할인하는지. 한 번에 12500원이나 하는 로컬 수영장은 20회를 연달아 끊으면 훨씬 저렴하다는 사실과 아이들이 수업을 하지 않는 시간과 요일은 언제인지. 수영장을 따라 기숙사로 향하는 길에는 아주 근사한 해질녘을 감상할 수 있는 해변가가 있다는 사실. 아이슬란드의 토마토는 욕 나오게 비싸지만 사실 자두와 복숭아는 저렴한 편이라고. 베이컨도 그렇다고. 시간과 경험을 온전히 쏟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을 체득하고 있다. 하나하나. 연인의 모국어로 사랑한다는 말을 더듬거리는 사랑스러운 인간처럼. 아이슬란드에서 살아가고 있다. 궂은 날씨와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어떤 일들이 있었다. 차사고가 났고 그래서 유메와 조금 어색해졌다. 우리는 어리고 유메는 나보다 세 살이나 더 어리고, 그래서 마음을 유하게 고쳐먹어보려 하지만 잘 안된다. 자꾸만 못된 마음이 든다. 남들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려는 태도나 일단 싫어하고 보는 나의 천성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를 낳는다면 이것만은 닮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지만 나의 날 선 태도에도 계속해서 따뜻함을 보여주는 친구들이 있다. 루카. 마유. 고마워. 너희들을 닮고 싶어.
아이슬란드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한국과 너무 멀어서 그런지 닮은 것이라고는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없는 잿빛의 이 나라가 나에게는 제법 매력적이다. LGBTQ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정말 어디서든. 공공 수영장, 대학교, 집, 식당, 관공서, 핸드폰가게, 벽면을 통째로 무지개색으로 칠해놓은 건물까지. 일 년에 한 번씩 여성의 총파업이 실행되고 모든 여성은 모여 여성의 권리를 외친다. 그리고 모든 것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어느 동쪽나라의 명절의 모습처럼. 인간의 권리를 힘껏 끌어안는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방법은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야지.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 가족들 내 고양이 내 강아지 나의 모든 것들. 나의 유년시절. 나의 동네. 내가 사랑하는 저녁밤의 공기, 겨울 아침의 냄새. 광화문의 거리. 소설을 쓰던 경희궁빌.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색의 무성한 잎들은 나를 살게 했어요 선생님. 선생님이 소설을 쓰라고 해서 저는 계속 쓰고 있어요. 그건 선생님 나에게 내린 어떤 거부할 수 없는 명령 같은 거였어요. 그게 제 몸에 남아 저를 지금껏 살게 했어요. 그래서 흘러 흘러 아이슬란드에까지 도착했어요. 여기서도 소설을 공부해요. 영어도 이제 잘해요. 가장 좋아하셨던 제 단편을 다시 쓰고 있지만 잘 안되네요. 잘 지내시죠. 이제 걷기 시작한 아이가 엄마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하는 무구한마음처럼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