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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man Jan 07. 2021

공동체의 책임과 개인의 양심

카를 야스퍼스, 이재승 옮김, <죄의 문제>, 앨피, 2014


1.

“우리들은 역사의 필연으로서 일어난 먼 과거의 일에 대해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사죄할 필요도 없다.” 



2.

위에서 인용한 말은 니시오 칸지(西尾幹二)의 말로, 일본 자학사관에 대한 비판으로써 나온 언설이다. 이 언설의 문제점은 정확히 무엇일까? 우선, '역사의 필연'을 가정함으로써 역사를 매우 자연화시킨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점으로 꼽을 수 있다. 역사상 일어난 모든 일을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던 그러한 것으로 간주할 경우, 학살과 전쟁 등 수많은 비극에 대해 책임자를 묻고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이 논리에 따르면, 학살이나 범죄 등은 특정 개인과 상관없이 어차피 발생하게 되어있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니시오 칸지의 책은 국내에 <국민의 방심>, 지식공작소에서 번역되었지만, 현재는 절판됨.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ext92&logNo=20018920667 에서 '한국인에게 드리는 글'을 읽을 수 있다)



3.

두 번째, 이 언설은 죄의식과 사죄를 병렬적으로 기술하여 마치 이 둘이 동일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그리하여 집단적 책임과 개인적 양심을 혼동하게 하는 기만적 논리를 작동시킨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죄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카를 야스퍼스는 죄를 4가지로 분류한다. 1) 살인과 같은 물리적 범죄, 2) 양심에 비추인 죄인 도덕적 죄, 3) 정치적 죄, 4) 인간으로서 관여되어 있는 죄인 형이상학적 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세 번째 정치적 죄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정치적 죄는 엄밀히 말해 죄는 아니고, 정치인의 행위와 국민의 지위에 준하는 책임의 문제다.  예를 들어, 히틀러는 선거를 통해 총통이 되었는데, 독일인 중에는 그에게 투표하지 않은 시민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설령 히틀러나 나치의 정책에 반대했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독일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갖는 정치적 책임은 존재한다. 다니엘서 9장에서, 다니엘이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 역시 정치적 책임의 한 예시로 볼 수 있겠다. 



야스퍼스가 이렇게 정치적 책임과 양심의 문제를 분할한 것은 귀기울여 들어볼 만한다. 양심의 영역과 책임의 영역은 구분지을 필요가 있을 듯하다. 정치적 책임에 가장 대비되는 것이 바로 도덕적 죄다. 도덕적 죄는 양심에 따른 문제인데, 정확히는 양심을 따르는 '개인'의 문제이다. 정치적 죄가 공동체의 영역이라면, 도덕적 죄는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4.

다시 니시오의 언설로 돌아가자면, 그가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 말은 도덕적 죄에 대해서는 맞는 말이다. 학살 같은 끔찍한 죄를 사죄해야 할 사람은 그 일을 저지른 장본인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논리에는 거대한 함정이 숨어 있다. 역사적 문제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말은, 정치적 책임의 문제를 도덕적 죄로 치환해버린다. 하나의 연속체로서 국가 안에 존재하는 정치적 집단에 대한 책임의 문제를 개인의 양심의 문제로 둔갑시켜버린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마치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부당한 심문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역사적 문제는 국민의 지위에서 비롯한 집단적 책임의 문제이다. 따라서 시민 개개인은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더라도, 정치 공동체로서의 '책임'의 문제를 묻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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