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빚지는 삶

by 조소민

2024년, 12월.


친구들이 집으로 와 대여섯 명이 함께 밥을 먹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친구들은 그래도 분명히 나아질 거라는 나의 말에 비관의 태도를 보였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졌으나 그들은 매일 집회에 나가고 매일 뉴스를 들여다보며 매일 일어나는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으므로 더 말할 수 없었다. 현장에 매일 가는 이들이 그렇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미래가 없는 이유를 구구절절 읊으면서도 집회에 나가는 친구들과, 옳은 것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집에서 책 읽는 것 말곤 하는 게 없는 나 중에 누가 봄을 맞이할 자격을 지녔을지 감히 생각해 본다. 생각할수록 그러한 자격은 절대 나 같은 낙천적인 이에게는 없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미운 말로 내 속을 상하게 해도, 그날, 그다음 날, 그다음 주까지 터벅터벅 국회 앞으로 걸어 나갔던 친구들에겐 화려한 봄날 그 이상의 보상도 충분치 않을 만큼 자격이 넘쳐난다. 내 마음속에서 그 ‘자격’을 증여하는 존재는 대체 누구, 혹은 무엇이기에 나는 매일 그 자격을 떠올리며 결과 발표 날짜를 받아놓은 수험생처럼 하루하루 무거운 기분으로 살아가는 걸까.


그러나 하여간 봄은 반드시 온다고 믿는다. 나는 여전히 낙천적이므로 그렇게 믿는 것 말고는 그 어떤 마음도 지니고 살 수가 없다. 자격 없는 이들이 버젓이 살아 있다고 해도, 그들에게도 공평하게 봄이 올 것이다. 누군가는 이 사실을 환영할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겐 불편함을 남긴다. 단 한 번 거리로 나갔다가 급작스러운 복통을 엄살처럼 호소하며 빠져나온 후에 영상으로만 광장을 쳐다보던 나에게도 역시 봄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 봄은 과연 내 것일 수 있는가? 이 혁명을 나의 일부로 품을 수 있는가? 과연 내가 봄을 만끽할 권한이 있을지 골몰하며 난 또 자주 슬퍼질 것이다. 그놈의 자격, 지긋지긋한 자격.


이 글은 또 어떤가. 봄은 반드시 온다고 의식을 함유하는 글을, 내가 써도 될까. 매일 현장에 가는 친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당연히 안 되지! 친구가 말한다. 나는 그게 진실이 가미된 농담이란 걸 알고 웃는다. 그가 내게 비건 케이크를 건넨다. 봄날에나 맛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맛이다. 봄을 빚지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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