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 일이 있었다. 꼭 걸어야 하는 전화인데도 걸고 싶지가 않았다. 엄마가 할머니 바꿔준다고 하면 어떡해? 나는 가볍게 투덜거렸고, 순간 흔들리는 인정의 눈동자를 보고난 직후에야, 할머니는 더 이상 우리 집에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할머니는 한 달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나와 인정의 상견례 일주일 전에 치러졌다. 요양 병원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셨다는 소식을 들은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첫 손녀가 결혼이라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앞두었을 때 할머니는 삶을 끝내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아파하시느라 내가 결혼을 하는지 마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건강하셨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나의 결혼에 관심이 없으셨을 수도 있다. 우린 서로를 많이 어려워했다. 우린 서로 반가워하지 않는 사이였다. 어릴 때부터 그는 나의 할머니라기 보다는 아빠의 엄마에 더 가까웠다. 나한텐 별로 관심이 없고 나랑 그다지 친하지도 않으면서 어느 날은 엄마에게 소민이는 왜 그렇게 나한테 차갑냐고 우는소리를 하셨댔다. 엄마를 괴롭히는 아빠의 엄마. 나랑 있으면 돌아앉은 채 굽이치는 등만 보여주는 노인. 먹거리를 끊임없이 챙겨주고 한없이 푸근하기만 한 자기들의 할머니에 대한 또래들의 이야기가 꽃필 때마다 나는 언제나 한 걸음 뒤로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유독 무뚝뚝하기도 했겠지만 나의 남동생에게 보여주는 애정어린 눈길로 미루어 보건대 사랑 표현이 서툰 분인 게 아니라 순전히 나를 사랑하기 어려워하셨던 분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 서울에서 대구로 올라가는 길은 고역이었다. 그 길 내내 쥐고 있던 감정을 뭐라 불러야 할지 정할 수가 없다. 슬픔 따위를 넘어선, 배신감, 박탈감, 모욕감. 그제야 난 할머니를 상대로 어떠한 ‘때’를 벼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아도 나의 봄은 온다, 나같이 차갑고 애교 없는 손녀에게도 아름다운 날이 온다, 그때가 오면 당신은 나를 빛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랑해 줄 순 없더라도 빛난다고 생각해 줄 순 있을 테니. 그때가 오면.
어른들은 흔히 여자가 빛나는 순간은 결혼하는 순간이라고 여기시므로 나는 그때를 결혼하는 날로 정해놓았다. 결혼할 사람이 생기고 나서부터 그때를 향한 은근한 기대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가 나의 봄날을 목격하게 될 그 순간을 말이다.
그 순간을 일 년여 남겨놓은 시점에 난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그를 매우 사랑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억울해서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인정의 얼굴을 본 적조차 없다. 요양 병원의 면회가 코로나 때문에 제한되어 있어서 나와 인정은 가족 중에서 조금 뒷순위였다. 다른 친척들도 마찬가지로 인정을 풍문으로만 듣고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나의 봄날을 보여줄 기회였던 결혼식을 보러 오지 못하시는 걸로도 모자라, 손주사위의 첫인사를 장례식장에서 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끝까지, 마지막까지,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할머니가 우리 집에 계신다고 착각한 건 아마 나의 지독한 미련 때문일 것이다. 미련을 부수기 위해 일기를 쓴다. 그러나 일기 한 편만으로 가루 낼 수 있는 수준의 미련이 아님을 안다. 알고도 쓴다. 나의 조모를 향한 험한 감정이 조금이라도 고와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