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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혁 Sep 15. 2024

위대한 퀄리티의 본질

예술은 사과맛이 난다 EP.2_예술이 얼마나 섬세할 수 있는가


특별한 것이라고는 단 한 줄기 녹색 빛뿐이었다.
멀리, 부두의 끝자락에서 반짝거리는.

예술의 퀄리티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우리가 퀄리티가 높다고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예술을 하는 사람들, 그렇지 않더라도 장인정신이 필요한 직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다. 얼마큼의 퀄리티를 가져가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항상 그 퀄리티를 내기 위해 방법을 고민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많은 대답은 열정이었다. 얼마큼의 열정이 어느 정도의 시간으로 들어가는가? 시간을 들이고, 그만큼의 원동력이 존재한다면 그만큼 높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고, 그게 보는 사람들에게도 전달이 된다고 많이들 생각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열정과, 시간을 들이는 것.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열정을 들이면, 보는 사람들이 그 열정을 공감할까?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열정이 퀄리티의 본질이라면, 열정 어린 작업을 보는 사람이 그 사람의 열정을 공감할 수 있냐는 뜻이다.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는 못했다. 누군가는 무척이나 열정적으로 작업을 했음에도, 사람들은 이해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강연이 열렸다. 박서원 빅앤트 대표님의 강연이었다. 나는 계속 궁금해하던 질문을 강연에서 던졌다. “작품을 만들 때, 그 작품에서 퀄리티가 높다라고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그분의 대답은 간단했다. 디자이너로서 어떤 게 더 높은 퀄리티인지, 그리고 어떤 것이 더 미적인지를 평가할 수 있지만, 사실 그건 개인적인 만족감이라고. 그래서 퀄리티라는 것은, 공통된 합의라고 이야기를 했다.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합의점에 도달하면 퀄리티가 높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들이 최소한으로 인정하는 퀄리티가 있고, 이 정도면 퀄리티가 높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는 것. 그 말을 듣고, 맞는 것 같았다. 사실 디자이너기 때문에 고민했던 세밀한 디테일들이, 나의 개인적인 만족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시간이 늦춰지더라도, 이건 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퀄리티라는 좋은 허물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퀄리티는 그저 나의 만족만을 위한 것이고, 대중의 선을 파악해서 그 정도를 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하는가 싶은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에 위대한 게츠비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퀄리티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은 무척 심플한 플롯을 가지고 있었다. 짝사랑을 하고 있던 한 사람. 여인을 위해 성공하고 돌아와서 잘 보이다가 어떤 사건으로 무너지는 이야기. 그래서 어렸을 적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그냥 그랬다. 뭐 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읽게 되었다. 책을 집어 들고 무척이나 진지하게, 한 글자씩 의미를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안 보이던 많은 것들이 보이더라..


“당신의 아내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문장이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츠비’ 이 인물은 참 불쌍한 인물이면서도, 자기의 가치관에 최선을 다한 인물이었다. 물론 많은 말들이, 그리고 많은 생각들이 결국에 엇나가긴 했지만, 그 본인은 자신의 꿈에 모든 것을 던졌다. 게츠비의 꿈은 데이지가 자신의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많은 색감적 표현들을 배치하고, 상황적 세밀함을 만들었다. 그래서 저 문장은 톰 뷰케넌에게 데이지는 나를 사랑한다고 대신 말한 표현이었다. 그걸 왜 그 사람이 말했을까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이 문장을 통해 게츠비가 불쌍해졌다. 뷰케넌을 사랑하지 않는 데이지에게 나에게 오는 것을 도와주었지만, 데이지는 결국 돈과 권력에 숨어버렸다. 데이지에게 게츠비는 값진 사랑이 아니었던 거지..


이런 부분들에서 나는 피츠제럴드의 디테일에 감동을 했다. 이런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섬세하게 컨트롤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소름 돋았다. 세심하게 단어를 컨트롤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감각적 전율을 선사하는 위대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퀄리티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컨트롤” 이 책처럼. 내가 얼마큼 컨트롤하고 통제할 수 있는가가, 퀄리티를 결정하는 본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을 해보자. 위대한 게츠비에서는 뼈대 있는 부자와, 신흥 부자의 선을 많이 그어놓는다. 그 예시 중 하나는 데이지가 입은 백색의 드레스와, 다른 사람이 입었던 아이보리 드레스를 비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이 책이 신흥 부자와 전통 부자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섬세하고 세밀한 컨트롤이 이 책을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아닐까 했다. 그리고 데이지의 성격을 보여주는 부분에서도, 게츠비의 형형색색의 옷들을 보며 울음을 터트렸다. 데이지는 흑과 백으로 살아가는 심심한 존재였지만, 개츠비가 보여주는 모습은 마치 도파민과 같은 존재고, 그것을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나타났다는 감정의 결과가 울음으로 나왔다는 말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깊이 있게 생각하다 보면, 모든 장면과 단어가 통제되었다는 감각을 받게 된다. 나는 이 순간이 작품의 디테일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퀄리티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퀄리티라는 것은 ‘얼마나 집요해질 수 있는가’의 결과로 보이는 것 같다. 얼마나 깊이 컨트롤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이 컨트롤할 수 있는가가 내가 얼마나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로 이어지지 않을까?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를 봐도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내가 영화 속에서 통제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주인공은 영화를 포기했다. 그런데 결국 다시 영화를 잡은 것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을 이해하고, 그 부분에서의 깊이를 주는 방법을 알고, 수평선을 맞추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뭐를 들여다봐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더 들여다봐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퀄리티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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