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가 INTJ가 되어간 과정
이번에 MBTI 검사를 다시 했다.
본가에 내려가 친구들을 만나고,
예전에 가깝던 대학교 친구들도 만났다.
같은 얼굴들이었는데,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다시 검사를 해봤고, 결과는 INTJ였다.
유형에 대한 설명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낯설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마음을 다시 읽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말하지 않으려 했던 생각들이, 숨겨두었던 모습들이
설명 속에 조용히 정리되어 있었다.
사람에게 많은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상태.
깊은 관계를 굳이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해도 어느 순간 선을 긋고 싶어지는 태도.
조용한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시끄러운 것들에는 쉽게 지쳤다.
사실 지금껏 나는 스스로를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믿었고, 그렇게 행동하려 애써왔다.
하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계속 어딘가 불안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장면들 속에 나를 오래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불안을 하나씩 정리하고 나니 지금의 결과가 나왔다.
마치 오래 붙잡고 있던 무언가를 이제는 내려놓아도 된다는
아늑한 구조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ENFP가 아니었고,
오랫동안 그렇게 보이려 애쓰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어릴 때부터 공감보다는 해결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가벼운 친밀감이 불편했고, 쉽게 가까워지는 관계를 경계했다.
그래도 겉으로는 잘 지내는 사람처럼 보이려 했다.
못나 보이거나 덜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게 싫어서,
그냥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어딘가 어긋나 보이는 느낌이 싫어서
사람이라면 할 법한 행동들을 조금 더 열심히 따라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무너진 것 같다.
그리고 충분히 무너진 뒤에야 그동안 외면하던 나를 그대로 마주하게 되었다.
괴물이라고 생각해서 숨겨왔던 나를.
괴물이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내가 인정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저 나라는 존재로 남겨두기로 했다고 해야 할까.
이제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더 많은 인정을 바라지도 않는다.
대신 내가 느끼는 감촉들에 조금 더 집중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꾸준히 밀어붙인다.
사람 관계에서도 덜 불안한 쪽을 선택한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불안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가면 뒤에 숨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마치 한 장면이 끝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간 것처럼.
그래서 요즘 행복하다.
처음으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어서.
P.S.
타로카드를 뽑았는데 죽음의 13번이 나왔다.
오늘 새로 태어나는 날이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