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단단해지는 것을 강함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단단하면 쉽게 부서지지 않고, 외부의 충격에도 견뎌낼 수 있다고 나도 믿었다. 하지만 이 믿음이 진리일까? 세상이 예측할 수 없는 우연으로 가득 차 있다면, 단단함이 꼭 이로운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단단한 것은 강하지만 유연하지 않다. 바람이 불어도, 물결이 밀려와도 단단한 것은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 끝은 대개 부러짐이다. 반면, 부드러운 것은 휘어진다. 바람이 불면 그 결을 따라 움직이고, 물이 흐르면 그에 맞춰 흘러간다. 단단한 바위는 파도에 부서지지만, 부드러운 모래는 그 흐름을 받아들이며 형태를 바꾼다.
삶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설정하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다져나가지만, 세상은 우리의 예측과 다르게 흘러간다. 예상치 못한 변화, 우연한 만남, 뜻밖의 기회가 우리를 찾아온다. 만약 우리가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단단함만을 고집한다면, 그 모든 우연을 거부하는 꼴이 된다. 반면,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면 우연은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회가 된다.
미셸 드 몽테뉴는 우연적 역할이 지위를 분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힘 있고 부유한 자를 만날 때 흥분을 억제하고, 가난하고 미미한 자를 만날 때 판단을 억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의 이러한 시선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우리는 흔히 개인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은 능력주의의 한계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 요인들을 간과하게 만든다.
우리의 행동의 결과를 오롯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단단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진리도 없고, 변하지 않는 가치도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어떤 것이 성공인지도 계속해서 달라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말랑해져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단단한 신념과 기준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우연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무지의 즐거움'에서 늙는다는 것이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심신의 상태를 경험하는 일이며, 이를 통해 자신이 더욱 풍부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스승의 역할이 아이들이 '어제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을 기쁘게 지켜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개성이나 자기다움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더욱 복잡해지고 변화하는 과정을 응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는 곧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복잡해지고 변화하는 것, 즉 말랑해지는 과정과도 연결된다. 우리가 자아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기존의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으며, 새로운 세상과 경험을 만나며 표정과 어휘, 발성이 변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성장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마치 성장하려고 껍질을 벗는 갑각류처럼 일시적으로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된다.
성장은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단단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흔들리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지키면서도 변화에 열린 태도를 가지라는 뜻이다.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멈추고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 아닐까.
우연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단단해지기보다 부드러워져야 한다. 유연하게 흘러가며 변화와 만남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