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두 번 출근하는 여자

엄마가 되고, 일하는 사람으로 계속 산다는 것

by 니나

갑자기 회사 로비가 시끌시끌해진다.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로비를 맴돈다.

회사 어린이집 아이들이 두 명씩 손을 잡고, 줄을 지어 아장아장 걸어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정말이지, 작고 귀여운 생명체들이다.


한때는 나도 내 아이를 회사에 데려오고 싶었다.

주머니에 쏙 넣어서라도.

하지만 IT 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3~5개월 단위로 바뀌는 프로젝트 근무지.

나는 옮겨 다녔고, 아이는 늘 그 자리에 남았다.

아이를 맡기고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야 돌아오는 날들, 그게 나의 방식이었다.


밤 3시까지 잠들지 않으려는 아이와 씨름하던 어느 날도 기억난다.

입주 이모님과 낮잠을 너무 오래 잔 탓에 아이는 새벽까지 말똥말똥했고,

남편은 아이와 함께 자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피곤한 몸으로 아이와 새벽까지 놀았다.

그리고, 아침엔 다시 회사로 향했다.

졸린 눈으로 내게 발을 흔들던 아이의 인사,

그 작은 몸, 햇살, 안녕.

그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느 날은 회의실에서 하루 종일 일했다.

핸드폰은 회의실 밖에 두고 있었다.

자료 수정, 리허설, 슬라이드 점검.

밤 11시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고,

그제야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막내가 의자에서 떨어져 턱을 꿰맸단다.

가슴이 철렁했다.

남편은 화가 났고, 나는 말이 없었다.

회사에서는 팀장이었지만,

그날 밤 나는 아이의 엄마로 충분치 못했다.


성당에서 미사 중 눈물이 쏟아진 날도 있었다.

도무지 멈출 수 없는 눈물.

그 순간,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낯선 할머니가

조용히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아질 거예요.”

그 말이 그렇게 따뜻할 줄은 몰랐다.


아이들을 유아세례 받게 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출근 전, 말도 못하는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나가는 심정은

차마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하느님께 맡기기로 했다.

세례명을 정하고, 유모차를 밀고,

아이를 데리고 성당으로 향했다.

그날의 간절함,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 동생한테 소리 지르지 마.”

큰아이가 어느 날 그렇게 말했다.

네 살 아이가 그런 말을 할 정도였다면,

그간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말 못하는 동생을 대신해,

그 작은 존재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속으로 울었다.

조용히, 깊게.


좋은 이모님을 찾기까지의 여정도 만만치 않았다.

블랙 시터, CCTV 설치, 호칭 정하기, 거리 두기.

때론 이모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꼭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해요?

그냥 집에 있는 게 낫지 않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그 길 위에서 나와 아이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육아와 커리어를 동시에 품는 삶.

팀장이자 엄마인 삶.

그 어느 하나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도 출근한다.

아이에게는 엄마로,

회사에서는 컨설턴트로.


나는 여전히 하루에 두 번, 출근하는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