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읽고 생각하다.

by 제이맘

삶의 고단함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따뜻한 국수 한 대접 내어줄 수 있는 국숫집 사장이 꿈인 검사.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냐는 후배의 질문에 "인생의 많은 문제들로부터 담대하면서도 그 안에 숨은 작은 기쁨들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검사.

발가락이 잘려 절뚝거리는 비둘기도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고, 그들이 처한 환경의 어려움을 알아가는 깊은 우물을 가진 검사.


이런 검사가 정말 있다고?

나도 법조인이기에 아는 검사들이 여럿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내가 아는 검사들과도 많이 달랐다

특수부, 공안부가 아닌 형사부, 공판부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일반인들과 부대끼며 삶의 어두운 측면을 보는 와중에도

그녀의 검사실안에 들어오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의자에게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검사라니.

그러면서도 삶의 위트도 놓치지 않는 글을 읽으며 흐뭇해졌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검사가 있다니!


검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많은 살인적인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고 있는데,

그 안에서도 저자의 사람에 대한 예의와 사건에 대한 애정 넘치는 글들을 보니

검찰개혁을 외치며 마치 검찰 조직이 사회의 거대한 악인 것처럼 주장하는 현실이 미안해졌다.

일부 정치 검사들 때문에 저자와 같이 무수히 많은 성실한 검사들까지 싸잡아 욕먹는 상황이.


법조인들의 그릇은 거기까지였다.
상상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가늠할 수 없으므로 속수무책인 것이 법조인들이었다.
법조인들은 그들이 상정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해서만 무게를 달 수 있는 저울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부끄러워졌다.

연차가 쌓이면서 기록만 보고도 다 안다는 듯이 행동했던 내 과거의 지난날들이.

의뢰자들을 직접 대면하기 전에 이미 기록만을 보고 유무죄, 혹은 승소 패소를 구분 짓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내 앞에서 길게 하소연하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한 내 행동들.

법조인들의 무언가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새 어떤 비극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저자의 우려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기록들을 두고도 사건과 관련 없는 그 옛날이야기부터 꺼내드는 의뢰자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자신이 없어졌다.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주장을 한다고 생각하며 말을 끊자,

변호사님은 왜 제 말은 안 들어주세요. 하며 억울해하던 의뢰자가 생각난다.

세상의 모든 요구에 답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답이 아니라 다만 관계로서만 존재하는 요구도 어딘가에는 있다는 저자의 말.

내가 정한 법률적 정답이 아니라 그들이 견뎌온 지난한 삶에 관심 갖으며 같이 아파해 줄 수 있을까.


언젠가 나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며,

저자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는 이처럼 따뜻한 법조인도 있다고.

T들이 난무하는 법조계에서 따뜻한 시선을 가진 법조인들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대문자 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