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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전북스 Aug 11. 2023

『실종자』를 이해하는 책 속 문장
16가지

<프란츠 카프카> 4편


한 권의 책에는 황금 같은 문장들이 여럿 존재합니다. 그러나 주제와 내용을 중심으로 독후감을 정리하다 보면, 몇몇 문장들은 언급되지 못한 채 사라지곤 합니다. <독후감>을 통해 줄거리와 몇 가지 주제에 대해 다뤄보았다면, <책 속 문장> 시리즈에서는 빛나는 문장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것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고자 합니다. 문장 하나하나의 아름다움과 의미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작품의 줄거리나 주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문장들을 기록하고,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와 저의 생각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실종자'를 더 잘 이해하는 책 속 문장들 ]  *페이지는 '신원문화사' 책 기준입니다.


■ 열여섯 살인 카를 로스만은 하녀의 유혹에 빠져 그녀에게 아이를 갖게 했고, 가난한 그의 부모는 그를 미국으로 보내야만 했다. (9p)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소설 역시 첫 문장을 통해 주인공에게 다가온 느닷없는 시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린 소년 카를 로스만은 하녀의 강압스러운 유혹에 현명하게 벗어나지 못했고,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를 임신시키는 사고를 일으킵니다. 장면 묘사 어디에도 로스만의 애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변신>, <성>, <소송>과 같은 외부적 시련과 같은 성질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사고를 저지른 철없는 소년이 아니라, 외부에 다가온 시련에 휩쌓여 고향에서 쫓겨난 나약한 소년입니다. 


특히,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시련에 대해 처음부터 강한 저항을 보여준 것과 달리, 16살의 로스만은 어떠한 저항도 보여주지 못한 채 정든 고향을 떠나고 있습니다. 간단해 보이는 첫 문장이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로스만이 첫 시련에서부터 패배한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음을 깨닫게 돕니다. 더욱이, 어떠한 연고도 없는 머나먼 미국 땅에 홀로 내던져진다는 사실은 이후 나타날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인공이 저항하지 못한 채 휩쓸리고 말 것임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줍니다.



■ 그러자 카를은 갑자기 뛰쳐나가 항해사의 의자를 살짝 스칠 만큼 비껴가면서 방의 복판을 무턱대고 가로질러 갔다. (..) 그와 동시에 실내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17p)


소설 초반부에는 이따금씩 로스만이 가진 패기와 용기가 표현됩니다. 소설의 첫 사건인 화부 사건에서의 카를은 강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을 그동안 보았던 주인공의 강한 의지와 같이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 장면을 조금 더 확장한다면, 사실 대단하지도 않고 고난의 극복이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당장의 흥분을 감추지 못해 선실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화부와 미리 준비가 되지 않아 당황하기도 하고, 오히려 화부를 제어하지 못해서 둘이 소란을 피우는 장면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카를은 이성을 잃고 감정에 매몰되어 보이는 미성숙한 모습만 표출할 뿐입니다. 오히려 이 상황을 해결한 것은 갑작스러운 외삼촌의 개입이었다는 점에서 카를의 행동이 얻어낸 성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가족의 상봉이라는 애틋한 분위기 속에서 본래의 문제 상황이 사그라들었다는 점은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넘어가버리는 듯한 느낌을 부여합니다. 


화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도입부에서는 주인공 카를 로스만이 외부환경에 의해 종속되고 있으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실패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프카는 소설의 첫 문장과 초반의 가벼운 사건을 통해서 외부 환경과 대비되는 주인공의 나약함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소설의 무거운 주제 의식에 대한 암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여보게 젋은이, 먼저 자네가 가진 행운을 깨달아야 하네. 지금부터 자네 앞에는, 자네가 이제까지 기대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화려한 인생 항로가 기다리고 있네. 이 사실을 자네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24p)


외삼촌을 만나게 된 카를에게 주위 사람들은 '기대하지 않았을 밝은 미래가 보장되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 대목에서 제가 주목했던 부분은 '카를이 이런 행운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혹자는 카를이 용기를 내어 선장실에 들어간 적극적 행동이 그에게 행운의 성과를 부여했다고 해석하지만, 저는 이에 반대합니다. 그가 화부를 만나게 된 계기는 단지 선실에 우산을 두고왔던 실수 때문이었고, 외삼촌이 그를 알아보기 전까지는 어떠한 가능성도 알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가 적극적 노력을 보였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행동력만 앞선 어린 소년에게 기대 이상의 행운이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삼촌과의 만남을 비롯해 그에게 주어지는 행운, 환경적 변화에 카를이 기여하는 바는 거의 없습니다. 단지 외부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행운이나 시련에 종속되고, 변하는 상황에 휩쓸려 그 이후를 걱정할 뿐입니다. 저는 이러한 부분에서 <실종자>라는 작품을 카프카의 다른 대표작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의 작품들이 '세상에 저항하지만 결국 패배하는 인간'이 핵심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세상에 저항하지도 못한 채 패배하는 인간'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소설에서 예상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운명의 노예가 되어 그 어떤 의지도 보여주지 못하는 인간상입니다.



■ '이 사람은 이 자리에 쓸데없이 개입해서 방해를 할 뿐만 아니라 이젠 나와 외삼촌 사이에까지 개입하고 있군.' (24p)


외삼촌이라는 긍정의 세계가 파괴되는 과정에서는 '개입'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입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끼어드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앞서 보았던 흐름으로 해석한다면, 모든 환경의 변화는 세상이 개인의 삶에 무작위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발생합니다. 카를을 곤란하게 만들고, 안정의 세상을 파괴한 인물들은 타인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말과 행동만을 밀어붙이는 인간상입니다. 로스만은 그들을 설득하고 회유하고 쫓아내려고 하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며, 오히려 그들의 고집과 강압에 주늑들어 문제를 방치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여러 번 같은 방식의 패배가 반복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소설에 나타나는 강한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너는 내 뜻을 어기고 오늘 밤 내 곁을 떠날 결심을 했으니까 네 뜻대로 일관하길 바란다. 그리고 평생 그 결심을 바꾸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을 거다." (47p)


세상의 무심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입니다. 카를의 외삼촌은 펹를 통해 카를과의 관계가 완전히 종료되었으며, 다시는 그러한 행복이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카를에게는 어떠한 해명이나 설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본래의 초라한 상황으로 돌아가야 하는 비극적 상황이 전개됩니다. 특히, 카를의 지위가 점차 부정적인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완전한 부와 권력이 보장되었던 사랑스러운 조카에서 호텔의 흔한 엘리베이터 보이로, 마지막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악단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가 가질 수 있던 약간의 소중함은 사라지고, 지속적인 혼란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사라진 그의 삶은 꾸준한 감소를 향해 나아갈 것이며, 이 소설은 부정적인 미래를 향해 진행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왜 길가에서 자죠? 이곳에 방의 여유가 있어요. 우리 호텔에서 묵도록 하세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 그럴 생각이 있다면 동료들을 떼어놓고 당신 혼자만이라도 오도록 해요."  (51p)


카를에게 다가온 두 번째 행운이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첫 번째 행운이 그러했듯이, 이번에 다가온 두 번째 행운 역시 카를이 그것을 받아야 할 타당한 이유는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그가 음식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사실이 여지배인의 마음을 얻고, 호텔 내의 직업까지 보장받아야 할 이유로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심지어 그 행동은 무일푼 동료들의 강압에 따른 억지 행동이었을 뿐이지, 주체적인 문제 해결 행동은 아닙니다. 결국 핵심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여지배인의 호감이라는 행운으로 또 다른 삶의 안정이 보장되었다는 점입니다. 로스만은 갑자기 다가온 환경에 대해 저항하거나 거부하지 않았고, 행운이 다가온 이유를 성찰하지 않은 채 순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소설 속의 그에게서 인간의 주체성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 카를은 불안과 역겨움으로 더는 그의 곁에 서 있을 수가 없어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57p)


로빈슨이 자신이 일하는 호텔에 찾아와 떼를 쓰자, 카를은 그에게 역겨움을 느끼는 동시에 호텔 사람들이 그 광경을 목격할까 극도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호텔 안의 누군가가 그 장면을 목격하여 엘리베이터 보이로서의 자리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카를이 로빈슨을 강하게 쫓아내지 못하고, 그를 자신의 침실로 들이게 되는 이유로 작동합니다. 


카를이 보여줄 수 있는 주체적인 저항은 결국 문제를 잠시 덮어두고 회피하는 정도의 눈가림에 불과합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행복에 타당한 이유가 없음을 깨닫고 있기에, 사건이 진행되며 점점 그 기회가 쉽게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공포감에 휩싸이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의 주인공 K는 성이라는 강한 목적의식을 위해 부딪히는 인물이라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분명히 카를 로스만이라는 어린 소년이 보여주는 주체성과 저항정신은 극히 나약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소설을 [고독 3부작] 의 다른 작품인 <소송>과 <성>을 다르게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다른 주제의식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세상 일이란 다 그런 거야. 세상이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지." (61p)

 

이는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는 로스만에게 들려온 단호한 대사이며, 곧 카프카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강한 주제 메시지라고 해석했습니다. 카프카의 실존주의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세상은 인간의 노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위적, 무목적적으로 작동한다. 인간은 저마다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삶 내내 분투하지만, 결국 어떠한 의미도 찾지 못한 채 패배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본 문장을 읽어보면 그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물론 소설 속에서 이 문장이 말하는 것은 '인간의 사건'에 해당하는 일이지만, '세상'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와 같이 세계의 작동 방식, 인간 삶의 목적과 운명으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누구든 그럴 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홧김에 판결을 내리면 사건은 그것으로 종결을 보는 게 보통인 것이다. (65p)  +  아닙니다. 지배인님, 완전한 결정입니다. 아닙니다. 다른 일자리로 옮겨 놓을 수도 없습니다. 전혀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67p)




■ 카를은 이제까지 들라마르샤를 몹시 경계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만이 유일한 구원자로 보였다. (76p)


카를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하여 선정하였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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