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오웰의 삶과 철학에 대해서 -
아무리 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살면서 한 번쯤은 <1984>라는 책이나 '빅브라더'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 특정 권력에 대한 비판 분위기가 강해지는 때에는 항상 1984와 빅브라더가 사회적 키워드로 급부상합니다. 조지 오웰의 가장 대표 작품인 이 책은 절대 권력과 그들이 행하는 통치 방식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개별 구성원은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동물농장>에서는 역시 나폴레옹과 그 수하들로 대표되는 특권 계층이 정보를 마음대로 조작하여 다른 구성원을 지배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보를 무기로 일반 구성원들을 조종하고, 자신의 권력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처럼 작가 조지 오웰의 글은 사회 계층과 권력 구조, 절대 권력과 피지배층의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혹자는 그에 대해 '20세기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작가'라고 평가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사회 이념과 구조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연재 시리즈 첫 번째로 알아볼 작가는 '정치적 글쓰기'의 상징, 조지 오웰입니다. 그의 삶과 글을 쓰게 된 목적, 그의 철학을 통해 그의 작품들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영국의 위대한 작가이자 사회비판적 글쓰기의 대가 에릭 아서 블레어, 필명 '조지 오웰'은 1903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태어납니다. 첫 돌을 맞기 전 영국으로 돌아왔고, 영국의 명문 기숙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스와 이튼스쿨에서 공부했습니다. 대부분 부유한 명문 집안의 자제들이었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조지 오웰은 '재능 있는 중산층 아이'로써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계층의 차이로 인해 차별받는 생활을 해야 했고, 그의 회고록에는 당시의 생활이 매우 불행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의 삶은 유년기부터 계층 관계와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영국의 식민지 버마에서 5년 간 경찰로서 생활합니다. 어려서부터 계층 관계의 문제와 차별을 경험했던 그가 이제는 권력자의 역할에서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행하는 권력 행위에 대한 회의감과 허무함을 느낍니다. 동시에 피지배인들 역시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애정을 갖게 되면서도, 자신에게도 피지배인을 도구로서 바라보는 영국인의 지배 의식이 있음을 알고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버마에서의 경찰 생활은 그에게 권력관계의 불합리함과 잔인성을 깨닫게 해 줌과 동시에 사회 하층 계급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됩니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사회 하층민을 더 이해하기 위해 직접 하층민의 삶에 뛰어듭니다. 영국의 빈민 수용소에 들어가 가난한 이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파리와 런던의 부랑자들의 삶에 뛰어들어 그 경험을 책으로 집필하기도 합니다(<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탄광 광부들의 일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들의 열악함과 중요성을 밝힌 작품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그의 초창기 작품들은 주로 피지배층의 열악한 삶에 뛰어들어 경험한 생활과 그들의 어려움, 그들의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1936년은 조지 오웰이 본격적인 '정치적 작가'로 거듭나는 해로 꼽힙니다. 이 시기 이후부터 그의 글은 사회사상과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을 직접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파시즘의 광풍이 유럽을 휩쓸던 당시 상황에서 오웰은 작가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 하층민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그는 사회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카탈로니아 찬가>를 집필했고, 이념과 사회 갈등의 이면에 대해 지적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1984>와 <동물농장>에서는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절대 권력을 맹렬하게 비판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글쓰기는 분명히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와 '작가와 리바이어던' 등을 읽어보면, 당시 작가와 문학은 더 이상 정치와 벗어난 순수한 존재일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그것이 사회적 도구로 전락하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문학이 추구하는 방향이었습니다. 그의 문학관에 대해서는 바로 이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웰의 작가론, 문학론을 표현한 대표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그는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에 대해 설명합니다. 작가는 크게 4가지의 동기를 가지는 데 (1) 똑똑해 보이고 싶고 기억되고 싶고 돈을 벌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 (2) 외부 세계에 대한 아름다움, 낱말과 소리의 묘미를 나누고자 하는 미학적 열정 (3) 사물을 기록하고 진실을 알아내어 후세에 보존하려는 역사적 충동 (4) 지향해야 하는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정치적 목적이 그것들입니다.
오웰이 밝히는 것은 자신은 원래 앞의 세 가지 동기를 추구해 오는 작가였고, 정치적 목적은 가장 작은 부분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격동의 세상 속에서는 자신이 본래 추구하던 '순수한' 문학은 존재할 수 없었음을 밝힙니다. 그가 살던 세상은 열강의 제국주의와 식민지배가 어느 때보다 격화되었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발발했으며, 스페인 내전, 러시아 혁명과 같이 이념적 갈등으로 인한 사회 혼란이 격화되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는 글쓰기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요소가 권력을 향해 집중됩니다. 오웰은 글쓰기가 이미 정치적 목적과 깊이 결부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그렇다면 오히려 글과 문학이 정치적 메시지를 이끌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에 "우리 시대 같은 때에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보기엔 난센스다."라고 적었습니다. 문학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면, 당의 선전물이나 팸플릿이 아니라 문학 고유의 가치를 지킬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오웰은 자신이 폭로하고 싶은 거짓이나 주목하고 싶은 사실을 위해 글을 썼고, 사회의 불합리한 진실을 밝혀 사람들을 계몽하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 자신의 지향임을 밝혔습니다. 정치적 목적이 배제된 글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의 관점에선 오로지 정치적 목적을 지닐 때 진정한 문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목적은 부차적으로 더해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조지 오웰의 작품에서 주로 다루는 문제의식과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피지배 계급의 삶을 조명하는 문학
유년기의 차별 대우, 버마에서의 경찰 생활, 부랑자와 광부들의 삶 경험까지 오웰의 문학은 언제나 피지배 계급의 삶에 대해 조명하고 있습니다. 버마에서 쓰인 에세이글은 피지배인들 역시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하나의 인격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배층의 역할을 연기해야 했던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등 권력관계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진 듯 보입니다.
그는 영국에 돌아와 직접 하층민의 삶에 뛰어들며 그들의 삶을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첫 작품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나, 그의 에세이 <스파이크> 등에서는 당대 유럽 사회의 하층민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그들의 삶에서 희망찬 미래를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지적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는 직접 광부들의 일을 체험하면서, 그들이 영국 문명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럼에도 얼마나 낮은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그가 사회주의자가 된 것, 절대 권력의 부조리함에 대항하고자 한 것은 어쩌면 하층 계급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그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거대한 사회 시스템에 의해 순응할 수밖에 없는 하층민의 한계를 지적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파시즘에 지배 하에서 그들이 기본적인 삶조차 잃어버릴 것을 강하게 지적하였고, 그의 대표작들은 언제나 거대 권력에 의해 조종당하는 나약한 개인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지 오웰의 글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을 이해함에 있어 피지배 계급에 대한 그의 애정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2) 구성원을 통제하는 강력한 통제 권력에 대한 강한 경고
빅브라더로 대표되는 오웰의 절대 권력의 가장 큰 특징은 절대 무너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완벽함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권력의 핵심은 정보의 조작과 제한을 통한 구성원의 사상을 통제하는 것에 있습니다. 정보를 완벽하게 지배하기 시작한 권력은 이제 모든 구성원의 사상과 행동, 믿음 체계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개별 구성원은 권력의 위대함을 의심하지 못하거나, 다른 구성원을 의심하지 못하고, 심지어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렇게 완성된 권력은 절대 파괴될 수 없습니다.
오웰의 대표작 <1984>와 <동물농장>은 한 번 구성된 절대 권력은 결코 파괴될 수 없음을 보여주며, 그 이전 단계에서 구성원의 강력한 저항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과 돼지들이 권력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분별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다른 동물들은 그들의 공고한 지배 구조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1984의 국민들은 거대한 전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정부의 수많은 권력 행위를 허용함으로써 그들의 절대적인 지배 권력을 손 놓고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웰의 이 무서운 작품들은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암시하면서, 우리 역시 잘못된 사회 구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3) 파시즘에 대한 경고와 민주사회주의의 강조
전 유럽에 사회 갈등이 고조되던 20세기 중반부터 오웰의 관심사는 파시즘의 확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파시즘(Fascism)이란, 구성원이 자신을 국가나 통치 권력에 동일시하고, 전체의 성공을 위해 기꺼이 개개인을 희생할 수 있다고 믿는 권위적이며 국수주의적인 정치 이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파시즘을 바탕으로 사회 권력을 지배하였고, 하나의 뜻을 향해 전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들의 사회는 개별 구성원의 희생을 기꺼이 정당화하였고, 통일성과 획일성을 최우선으로 추구하였습니다.
오웰의 에세이 <민족주의 비망록>에서는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신념을 비판합니다. 이들은 힘과 경쟁을 우선순위로 두기 때문에, 자신의 집단이 언제나 가장 강해야만 하고, 유일한 정의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잘못된 사실이나 그릇된 가치라도 자신의 편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믿는 행태를 보입니다.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을 당시 가장 충격받았던 것은, 특정 사실이 이념의 편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절대적인 사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편이 말하는 대로를 믿는 것이 모두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파시즘의 대두는 앞서 말한 강력한 절대 권력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개별 구성원은 그것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동조하고 있었던 것이 당시의 상황입니다.
조지 오웰은 그에 대한 대안으로 민주사회주의를 주장합니다. 거대한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민주적인 사회 시스템을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해선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사회주의를 택해야만 함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오웰은 당시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자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이를 새로운 사회 시스템 적용시키고자, 그의 생각과 주장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전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