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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하 Jan 30. 2022

반포주공아파트 1단지

더이상 작별이 개인만의 몫이 아니도록






  많은 사람이 성냥갑 아파트를 욕하는 시대다. 성냥갑 아파트로 대표되는 우리의 옛 아파트들은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자 재건축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요즘같이 많은 사람이 주택의 추가 공급을 절실히 원하는 때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이러한 아파트들에 왜인지 모를 애착이 존재한다. 일생의 대부분을 바로 그 '이러한 아파트들'에서 살아서일까? 옛 아파트들에서 그들만의 멋을 느낀다.


   요즘 지어지는 고층 아파트들은 주로 하늘을 찌를 듯한 형태에, 위압감이 묻어 나온다. 그렇기에 짙은 색깔을 지닌 신축 고층 아파트 단지들을 멀리서 보고 있자면, 서양의 성채가 떠오른다. 반면, 옛 아파트들은 우리나라의 고성을 떠올리게 한다. 서양의 성과 동양의 성이 각 문화권의 필요로 적절하게 지어지고 각자의 멋이 있듯 신축 아파트와 옛 아파트 또한 각자의 멋이 있다. 고즈넉하게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서 우리 곁에 있는 것이 바로 옛 아파트다. 더군다나 수십년 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 정형화된 형태가 자리잡히기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지금은 찾기 힘든, 각자만의 색다른 구조와 디자인을 뽐내기도 한다.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내려 아무 목적지 없이 걸어가던 필자는 고층 아파트들만 즐비한 줄 알았던 반포동에서 그런 옛 아파트를 발견했다. 반포주공아파트 1단지. 필자의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1년에 분양을 시작한 이 아파트는 자신의 몸값이 800배가 될 때까지 이 자리를 지켜왔다. 필자가 이곳을 찾아왔을 때엔 옛 영광을 뒤로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준비를 거의 다 마친 상황이었다. 모든 세대가 집을 비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가 보니 마치 '나는 전설이다'의 윌 스미스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분명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한가운데에 있는데도 인류 문명이 멸망한 듯 너무나도 고요했다. 으스스하면서도 서울 내에서 이러한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란 생각에 아무도 없는 아파트 단지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면 다시는 밟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이곳을 한 발짝 한 발짝 나름 꾹꾹 밟아가며 둘러보았다.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공가' 표시가 붙지 않은 집이 없었고, 영업을 하고 있는 상가 건물 또한 보기 힘들었다. 마치 몇 달 전까지 사람이 거주하던 공간이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사람의 흔적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워진 모양이었다. 단지 내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조합원 이주 개시'라는 크나큰 현수막만이 2021년 하반기까지는 이곳에 사람들이 거주 중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재건축은 머지않아 보였다.





   '개발'은 20세기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이었다. 재건축과 재개발로 많은 가구가 허물어졌다. 과거가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듯 옛 건축물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몇천만의 인구가 사는 이 좁은 나라는 수십 년을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제 개발 선호 사상은 우리의 DNA에 각인된 것만 같다.


   그래서 그런지 재건축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수가 많고 조직도 장대하다. 보통의 재개발, 재건축 사업들은 이런 조직의 힘을 통해 지난하기도 하지만 꾸준하게 사업을 추진해 나간다. 반면, 세련된 아파트에 밀려 사라지는 투박한 아파트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일은 그렇지 않다. 각자의 머릿속, 또는 카메라 속으로 파편화된다. 뚜렷했던 기억은 시간이라는 매서운 바람에 의해 풍화되어 흐릿해지고, 결국에는 망각의 지평선으로 사라진다. 이 망각의 지평선에서는 빈부의 차이도 없다. 엘리트들의 거주지였던 반포주공아파트도 재개발 사업으로 통째로 철거된 수많은 판자촌과 비슷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누군가의 보금자리, 누군가의 현실 또는 희망이었던 곳들이 너무나도 초라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사라진 건물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일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너무나 빠른 호흡으로 달려오느라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길을 기억하는 데 있어 굉장히 서툰 모습을 보인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처럼 사진을 찍고 그것들을 아카이브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누구나 쉽고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공동체의 힘으로 흔적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렇게 흔적을 남기다 보면,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간 도시의 아름다운 나이테를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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