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요즘 SNS에서 핫한 책’ 코너에서 찾은 책. 표지를 보니 피드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언뜻 떠올린 기억으로는 “마감 없으면 일을 못 하는데, 마감 맞추는 거 너무 힘들어, 엉엉”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 마음 속으로 만 번쯤 고개를 끄덕이고 집어들었다. 다 읽고 난 첫 감상은 왠지 모를 배신감이었달까.
나는 매번 마감을 앞에 두고 계획을 세우는 데 한참, 목차를 쓰는 데 한참을 들여놓고 사전조사에서부터 머리를 멈춰버렸다. 그리고 마감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다. 논문과 브런치, 퍼블리 등을 마구잡이로 들락날락거리며 이해도 못 한 내용들을 정리한다. 마감 하루이틀 전에서야 한글파일이나 PPT에 손을 댄다. 내가 카카오톡 PC버전을 이용할 때보다 타이핑이 빨라지는 순간은 이 때뿐이다. 완성본을 읽어보면 그저 내 뇌피셜을 확증해 주는 자료만 겨우겨우 얼기설기 채워넣은 수준이다. 가끔은 아무리 찾아도 내 가설을 증명한 자료가 없어, 혹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설명하는 자료만 있어 ‘멘붕’에 빠진 채 처음부터 뒤엎기도 한다.
마감이 없을 때는 또 어떤가.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쓰고 싶은 글이 생각났다. 우선 내 생각에 아이디어는 기가 막힌 것 같은데 아무래도 공부가 필요한 영역이었다. 언제나처럼 참고문헌부터 찾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논문을 100건 정도 프린트해 놓고는 한 5건 읽었나? 지금은 이면지 박스에 쌓여있다. 혹시라도 조슈아가 정말 이면지로 쓸 까봐 파일에 넣어두었지만, 차라리 이면지로 쓰이는 게 이 종이에게 더 가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반 년 넘게 글은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이전 회사에서 새로 오신 과장님이 차장님께 “얘는 어떤 애에요?” 라고 물었을 때, 차장님은 “걔 시켜놓으면 어떻게든 알아서 일정 맞춰 준비해놓지. 근데 일 시킬거면 언제까지 하라고 확실히 말해야 돼. 안 그러면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반 년 동안 안 한다. 난 아직도 못 받았어.” 라고 대답했다.
마감이란 무릇 이런 것이 아닌가. 마감이 없으면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마감이 있으면 심장이 달달 떨려올 때까지 어디 처박아 두었다가 눈앞이 새하얘질 때쯤 초능력을 발휘해 어떻게든 넘겨내는 것. 그런데 <마감일기>를 쓴 ‘마감노동자’들은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논문 쓰기’ 라는, 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계획을 지켜나가는 동기처럼 유니콘 같은 존재들이었다. 마감이 있으니 맞춰서 하고, 마감에 늦지 않기 위해 반 년 전부터 한 문단씩 써내려가는 사람들. 개중에는 이숙명 작가처럼 3주나 마감에 늦는 사람도 있어서 조금 안심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배신감보다 내 마음 속에 깊이 파고든 것은 마감이 주는 하루를 살아갈 힘, 그리고 마감 후의 안도감과 기쁨이었다. 당장 죽을 것처럼 피폐해졌으면서, 어떻게든 결과물을 넘기고 나면 찾아오는 후련함이나 웃음. 결국 마감이란 나의 일과 삶을 유지하고 이끌어나가면서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나의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보람과 즐거움을 줘버려 중독시켜 버리는 무언가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마감도 없이 하루를 보내는 요즘, 편안하면서도 불편한 건 나의 일상을 채워나가는 쫄깃한 심장이 없어서일지도.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평소 호흡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마감 근육’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 그 근육은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마감을 해내도록 만드는 근육. 쉽사리 “오늘은 야근하지, 뭐”라고 말하지 않도록 돕는 근육. 어렵사리 잡은 약속을 일 핑계로 취소하지 않고, 사생활을 지키면서 할 일을 해내도록 만드는 근육이다. (p.17)
결국 마감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나의 마감이 늦어지면 다음 사람이 마감을 맞추느라 자신의 시간을 갈아 넣어야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는 것. 나의 일상이 중요한 것처럼 그들의 일상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자각하는 것. … 지금까지 최선의 지점에 멈춰서는 것. 다음 사람을 믿고, 지금까지의 최선의 공을 던지는 것. 그것이 마감의 규칙이다. (p.19)
어쩌면 지구 자체가 천국에서 잘못 산 자들이 추방당하는 이세계일지도 모르죠. (p.45)
사람은 왜 글을 쓸까요? 왜 글쟁이들은 항상 돈 안 된다, 마감이 끔찍하다, 업계 상황이 치사하다,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글을 끊지 못할까요? 자신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표현은 모든 치유의 시작이자 핵심이기도 합니다. 밥벌이를 위해 글을 쓰는 건 지긋지긋하지만 그거라도 안 하면 정신병원에 다닐 돈도 없는 가난한 글쟁이가 무엇으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글을 쓸 자신이 없을 정도로 글 때문에 상처받고도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글쓰기밖에 없다는 게 이 직업의 비극입니다. (p.55)
마감을 한다는 것은 끝내기로 한 것을 끝냄으로써 약속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크든 작든 그건 내 삶의 흐름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일과 같다. 삶의 시간을 이쪽과 저쪽으로 구획 짓는 일이다. 마감 이전에는 내 모든 것이었던 하나의 세계를 그곳에 놓아두고 떠나는 일, 마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하려고) 했던 자신을, 어쩌면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더 나아졌을지도 모를 그 세계에서 단호히 끄집어내 그 너머의 세계로,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p.91)
돌이킬 수 없다면 돌아보는 능력이라도 제대로 사용하자고 생각했다. 그 능력을 후회로 짊어지고 뒷걸음질하며 사는 대신 반성 삼아 딛고 멀리 뛰는 사람이고 싶었다. (p.141~142)
매일의 무거움이 다음의 나를 만드는 장아찌 같은 삶을 오늘도 지속 중이다. (p.150)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해내는 건 내 개인 역량이다. 모든 일을 감사하게만 받아들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p.154)
힘없고 게으른 나를 이긴, 오늘의 똘망똘망한 나. (p.171)
‘내일의 내가, 조금 뒤의 내가 할 거야’라는 농담도 점차 나에게 던지지 않게 되었다. 잠깐, 하면서 손을 내밀고 ‘그 일이라는 거…… 지금 하면 내일의 내가, 조금 뒤의 내가 웃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벌떡 일어나곤 한다. (p.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