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여사친)은 존재하는가라는 주제로 우리의 대화의 오류를 알아보자
당신은 아마 한때 유행하고 지금까지도 종적을 완전히 감추지 않는 어느 한 주제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남사친(여사친)은 존재하는가?
라는 주제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수많은 미디어에서 이 주제로 흔히 사람들이 멋지거나 두뇌가 뛰어나다거나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는 게 일반적인, 소위 말하는 인플루언서나 연예인들이 한 쪽의 정답을 내놓고 그 근거를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을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나는 절대 자만적인 인간이 아니므로 그들이 단지 인간이 흔히 빠질 수 있는 어떤 심리적 편향을 이유로 일종의 '실수'를 범한다고 생각하며 다른 부분에서 나보다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안다.)
왜 그럴까?
먼저 남사친(여사친)이 있냐는 주제로 어떤 결론이 나려면 그 대화를 하는 주체들이 상호 간에 '친구'라는 애매모호하고 주관적 특성을 지닌 단어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확립해야 함을 아무도 모른 상태에서 답을 도출하고자 하며 애쓰는 모습이 내 눈에는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니가 생각하는 친구와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가 다른데 답을 먼저 도출하려고 하니까 결론이 날 리 없다. 당신은 당신이 친구라고 생각하는 그 이성과 어떤 행위까지 가능하기에 그 사람을 친구라고 말하는가? 둘이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친구인가? 둘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면 친구인가? 둘이 여행은 가줘야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서먹하더라도 아는 사이고 동갑이면 친구라고 얘기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정의는 각각 다르며 그 누구도 자신의 의견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 같은 경우 진짜 가까운 친구들에게 친구라고 내가 정의하는 것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 싫어, 함부로 다른 사람을 친구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단 둘이 여행도 가능하며 서로의 부모님도 알고 빨개벗고 목욕이라도 해봤어야 비로소 나는 친구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친구에 대한 정의의 범위가 나보다 훨씬 넓을 수도 있다. 그럼 이렇게 친구에 대한 정의가 각각 다른 사람들끼리 어느 정도까지를 친구로 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 확립을 정해놓지 않고 대화를 이어간다면 당연히 '남사친(여사친)이 존재하는가'라는 주제의 결론은 날 리가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같이 빨개벗고 목욕 정도는 해줘야 친구라고 생각하며 남사친(여사친)은 있다 또는 없다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인사만해도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연히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럼 상호 간에 개념 정리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가정해보면 답을 도출할 수 있을까? 그렇다. 여기에 대한 나의 답변은 다음 문장으로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다고 본다.
동성 친구 같은 이성 친구는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동물이며 특히 '연애'에 있어서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것만큼 다르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혹시 당신이 나의 답변을 보고 '아닌데?'라던가 나의 답변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고 싶은 쪽이면 묻고 싶다. "당신이 가장 친한다고 생각되는 동성 친구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당신이 친구라고 주장하는 이성 친구와 똑같이 할 수 있을까?"
답을 내기 애매한 것들은 언제나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결론을 내기 쉽다. 말하자면 당신은 아마 당신의 가장 친한 동성 친구와 목욕도 할 수 있고 같은 침대에서 잘 수도 있을 것이며 당신의 창피한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주기도 할 것이다. 당신이 지금 생각하는 가장 친한 동성 친구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과 대화를 당신의 이성친구와 '같은 마음'으로 할 수 있다고? 속단은 금물이라는 말은 언제나 진리이지만 내 질문에 혹시나 당신이 내 앞에서 긍정의 답변을 내놓는 사람이라면 나는 굳이 반박은 않되, 당신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할 것이다.
내 경험을 미루어 볼 때, 많은 경우 남사친(여사친)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성별은 대체로 여자가 많은데 그것은 남자라는 동물에 대해서 몰라도 한참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소리라고 나는 단언한다. 백번 양보해서 당신이 친구라고 생각하는 이성인 남자친구와 빨개벗고 목욕을 해도 동성 친구와 목욕을 하는 것처럼 '똑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당신의 친구인 남자도 그럴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 남자의 머릿속이 어떤 것들로 가득 차버릴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굳이 보태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거라고 본다.
요지는 남사친이든 여사친이든 이성 친구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있지만 동성 친구 같은 친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가장 친한 동성 친구와의 친밀도를 100이라고 가정하면 이성 친구와의 친밀도가 99일지언정 같은 100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 또는 내가 서두에 말한 미디어에 출현하는 소위 인플루언서들은 마치 어떤 주제에 대해 보기 2가지 중에만 답이 있는 것처럼 단순하게 접근하며 흑백논리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흑과 백으로 생각하려 한다. 세상은 회색인데도 말이다.
이것은 마치 코카콜라가 굳이 자신들의 자판기 옆에 펩시 자판기를 두어 코카콜라 자판기만 있을 때 사람들이 '콜라를 마실까 말까?'라는 생각을, 펩시 자판기에 코카콜라 자판기도 함께 두어 '펩시를 마실까? 코카콜라를 마실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실질적으로 매출을 올려버린 사례와 그 맥을 같이 한다.
펩시와 코카콜라 자판기가 있으니 '마시지 않는다'라는 선택지를 못 떠올리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심리 반응이라는 의미이다. '남사친(여사친)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이 주어지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양극단에 있는 답 2가지 중에만 선택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옳은 답은 언제나 그 중간 지점 중에 있을 것인데도 말이다.
비슷한 주제인 부먹과 찍먹도 같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밈으로 받아들여 유머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것도 나는 안다. 그러나 적지 않게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며 한쪽의 답변을 주장하고 성을 내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찍먹을 해야 된다는 둥 부먹을 해야 된다는 둥 같이 탕수육을 먹는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한쪽의 행동을 취하려고 한다. 그냥 부먹용(찍먹용) 그릇을 하나 더 가져와서 모두다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흑백논리에 빠지지 마라. 모든 의문에 다른 답이 있을 수 있음을 알아라. 제시된 보기에서만 답을 찾을려 한다면 다른 우매한 사람들과 다를 게 없어진다. 또, 대화를 할 때 어떠한 주제에 상호 간에 개념 정리를 해야할 주관적 단어가 있다면 거기에 대한 정의부터 정리하고 대화를 시작해야 결론이 날 수 있다.
이 글을 이해하고 유튜브 같은 곳에 들어가 남사친(여사친)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영상을 한번 봐라. 내가 실소를 금치 못한 이유를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