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마을버스를 탔다 그곳에 살 땐 잘 타지 않던 코스의 마을버스였다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마을버스는 그곳의 바깥에서 그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장소 하나하나가 나를 불러세웠다 맥도날드 신농씨한의원 예향어린이집 파우세 물놀이장 인창도서관 밤푸스 …… 그곳들은 몇 년간 못 본 것을 보상이라도 하라는 듯 나를 불러세웠다 버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기억들은 압축되어 멀미가 났다 네 식구가 먹던 햄버거는 한약 냄새를 품고 어린이집 가방으로 들어가 그 옆 카페 테이블 위에서 팥빙수로 바뀌었고 첨벙첨벙 물놀이하던 아이들 곁에서 먹던 피자가 되었다가 도서관 식당의 떡볶이가 되었다 마을버스는 오래 뭉쳐둔 기억을 토해내듯 나를 내려주고 떠났다 버스는 떠났지만 나는 이제 그곳 가장 깊숙이 멈춰 섰다.
조금 더 그곳으로 걸었다 오래전 매일 걷던 그 길을 더듬었다 이제 멀미는 나지 않았다 걷다보니 뭉쳤던 기억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익숙한 얼굴에 말을 걸었다 일방적인 익숙함이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익숙한 편의점에 들어가 껌을 샀다 익숙한 샛길을 올라가면 살던 집이 나온다 더 익숙한 얼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올라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길을 바라보다 엄마가 생각났다 네 식구를 따라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떠나야 했던 엄마 이곳에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엄마는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고 지금 근처에 혼자 있다 엄마를 떠올리니 샛길을 올라갈 수 없었다 익숙한 얼굴들을 만나는 것이 겁이 났다 발길을 돌렸다
23번 버스를 타고 이곳을 벗어났다 그곳을 떠난 후 즐겨 타는 버스다 버스를 타고 바깥으로 바깥으로 벗어났다 그곳보다 익숙해진 간판들이 지나갔다 창문을 열고 숨을 토해냈다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도 시차가 생기던가 그곳보다 더 오래된 그곳들이 순서없이 떠올랐다 다시 멀미가 났다 눈을 감고 익숙한 진동을 느꼈다 밤이 깊었다 낯설고 익숙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