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 읽기를 시작하며.

<아들, 뭐 읽어>

by 횸흄

남의 일기를 읽는 일은 직업의 한 업무 중 하나였다. 아이들의 일기를 검사하다 보면 아이들의 사정과 생각을 이해하는 측면은 업무의 영역이고, 그 내용과 표현에 마음을 뺏기는 건 독자의 영역이었기에 일과 재미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업무였다. 시절이 변하여 남의 일기를 검사하는 것은 인권을 해치는 일이라는 해석 하에 그 업무는 자연히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생활 글쓰기'나 '세줄 쓰기', '주제 글쓰기' 등 다른 이름들이 대신했다. 업무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독자로서의 재미는 많이 사라졌다.


가끔 다른 사람의 독서일기를 읽곤 했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나의 감상과 비교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또다른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작품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서평집이나 독서에세이와는 다른 독서일기만의 느낌이 있다. 좀 덜 형식적이고, 시간의 연속성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글쟁이들의 글이 마구잡이식이진 않았고 매일 쓰는 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쓰는 다른 글들에 비해 부담없이 읽혔고 그 즈음의 작가의 상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책 보다는 글쓴이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책의 목록을 얻기도 했지만 그보단 작가를 좋아하게 된다고나 할까?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부터 난다 출판사의 [읽어본다] 시리즈까지 독서 일기를 찾아 읽었다.


좋은 그림을 오래 자주 보면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진다. 좋은 연주도 마찬가지이고, 좋아하는 노래나 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듯 자주 읽다 보니 나도 써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간헐적으로 기간을 몰아 <매일 독서일기 쓰기> 프로젝트를 혼자 진행하곤 했다. 그렇게 몇 시즌을 거치고 나니 사춘기에 넘어가려는 아들이 보였다.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 온갖 독서행사에 참여하고 카페에서 읽고 쓰는 게 익숙했던 아이였지만 사춘기가 다가오니 멋을 내고 엄마의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무척 당연히. 어쩌면 이 아이와 무언가를 같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해가 아닐까 싶었고 그 '무언가'를 정하려고 주변을 살피니 책이라는 연결고리가 보였다. 거절을 당할 준비를 하고 제안을 했는데 덥썩 호응을 해주었고 그렇게 함께 쓰는 독서일기를 시작했다. 나는 늘 그랬듯 매일 100일을 써보고, 아들에겐 나의 계획을 전하되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매일을 썼고, 아들은 드문드문 썼다. 그게 어딘가? 쓰는 동안 우리는 다투기도 했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 과정을 어여삐 보신 바람길 출판사에서 우리의 일기를 책으로 내 주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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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내자고 할 때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일기는 '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출간을 염두에 뒀더라면 아들도 나도 좀 신경을 썼을 텐데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사장님이 어차피 조금만 찍을 거라 몇 명 안 본다는 말에 위안을 삼아 오케이 사인을 했고 그 다음은 나보단 사장님의 역할이었기에 어찌어찌 진행이 되어 출간까지 되었다. 사장님의 그 위안의 말은 현실이 되어 아는 사람보단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책이지만 그때부터 나는 남의 일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기가 책이 될 수 있다면 그 책은 나처럼 읽는 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쓴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을 듯 하고 대부분은 읽는 이를 염두에 둔 경우라 그런 일기는 어떤가 궁금했다. 그렇게 하나 둘 읽다보니 너무 재밌었다. 보라고 쓰는 일기는 이런 맛이 있구나! 그러면서 지금은 사라진 학교의 일기장이 생각났다. 아이들도 학교에 일기를 제출할 때는 사실 자기만의 비밀일기가 아니라 보라고 쓴 글일텐데 굳이 그것을 인권 침해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아이들의 첫 작품을 독자와 공유하는 문화를 어쩌면 없앤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직을 하기 전 내 책을 모티브 삼아 아이들과 '30일간의 독서일기' 활동을 했다. 일기가 사라진 시대에 일기를 부활하는 활동은 나나 아이들이나 모두 낯설었다. 매일 쓰라는 요구가 싫었지만 내 책을 본 아이들은 그렇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도전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 듯 날짜를 넘어갈수록 자기 자신에게 신기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고, 독자인 나와 친구들에게 대화를 거는 일기들도 있었다. 이 활동을 하며 확신했다. 모두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히 많은 아이들은 자신이 표현한 글을 누군가 봐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보라고 쓴 일기는 나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다른 아이들도 읽게 했고 점점 우리는 그 독자들을 겨냥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내 일기가 인기가 많았는데 점차 아이들은 자기들 눈높이에 맞는 친구들의 일기를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서운했지만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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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독서일기만 읽었었는데 나도 그 영역을 좀 넓혔다. [서점 일기], [일기 시대], [이수의 일기], [우한일기], [카운터 일기], [제시의 일기] 등을 읽었다. 직업과 환경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일기는 저마다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사람을 아는 데에 일기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책을 읽고도 사람들은 나를 느꼈을까? 내가 읽은 것보다 훨씬 많은 남의 일기가 출간되어 있었고, 남의 일기를 찾아 읽은 지 한 해가 넘어 이제는 그 일기들에 대해 또 써보고 싶어졌다. 그 처음으로 [중학생 일기]라는 POD BOOK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일단 오늘은 이렇게 이번 매거진을 시작하는 글만 쓰고, 한 번 더 읽은 다음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