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일기], 박문정, bookk

중학생 문정이, 작가 박문정을 응원하며!

by 횸흄

박문정이라는 이름이 일단 무척 작가스럽다. 가운데 글자는 文일 거라며 내 멋대로 작명을 한다. 이 책을 선택하는 데에 작가의 이름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기에 이름으로 [중학생 일기] 읽은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앞의 글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나는 내 책이 출간된 이후 남의 일기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어 온라인 서점에 '일기'라는 검색어를 종종 입력하여 읽을 만한 책을 골라 읽곤 했다. 그 책들이 [서점일기], [제시의 일기]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을 고른 날도 그런 여느 날 중의 하나였다. 나와 같이 독서일기를 쓰던 아들은 어느새 중2가 되었고 우리의 대화는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애정표현은 거부감의 상징이 되었기에 중학생이 썼다는 이 책은 나의 눈을 멎게 했다.


일단은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해봐야지 하고 신청을 했는데 얼마 후 'POD도서'라서 취소당했다. 'POD도서'가 뭐지 하고 다시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의 정보를 보니 진짜로 'POD도서'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뜻을 찾아보니 'Publish On Demand' 즉, 주문제작방식의 도서라고 한다. 이 책을 만든 부크크 출판사가 POD전문 출판사인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주문을 하고도 한참 후에야 이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책은 아주 얇았고, 독립 출판물의 느낌이 물씬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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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이는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교우 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전학을 왔다. 그러하기에 세상에 대한 시니컬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고, 다른 사람을 경계하거나 자신을 상처로부터 보호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굉장히 균형감각이 있는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사춘기의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되 정제되어 있다고나 할까? 감정의 기복이 사춘기의 특성이라고 할 때 그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다른 면을 보였다. 문득,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당시 가장 싫어하던 선생님은 우리 담임 선생님이었던 윤리 선생님이었는데 윤리 교과는 의외로 재밌었다. 특히 공자나 노자의 말처럼 동양철학 쪽이 콕콕 눈에 들어왔는데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상심'이라는 말이 무척 맘에 들었다. 문정이처럼 나도 내 마음이 요동치는 게 너무 싫었던 모양이다. 언제나 평상심을 유지하고 싶어졌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눈에 띄는 아이도 아니었는데 나 역시 문정이처럼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추구했다고 할까? 하지만 나는 그러하기엔 너무나 발랄했고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아이였다. 돌이켜보면 역으로 눈에 띄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아 누군가는 그런 내가 꼴보기 싫었을 수도 있겠다 싶고 실제로 그런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평상심' 때문이었을까 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가지는 마음에 대해서는 그다지 요동치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예민하지 않은 아이였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눈치채지 못하며 살아왔다. 훗날 누가 누가 그랬다더라 하는 말을 듣고서야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정도의 마음이었다.


문정이는 나보다는 좀더 결이 예민한 아이이고 사람에 대한 상처가 있다보니 사람의 관심에 대한 경계심이 많다.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친절하지?'라며 다정한 친구에게조차 마음을 다 열지 못하는 상태,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그 마음을 문정이는 '흉터'라고 표현한다. 표현을 말하자니 작가로서의 박문정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겠다. 이 짧고 평범한 중학생의 일상을 표현하는 글이 중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의 사유가 깊다. 나 역시 사춘기 시절 끄적끄적 적잖이 썼지만 나의 글들은 그저 아름답기 위해 애쓰거나 압축적으로 쓰려고 했을 뿐인데 박문정 작가의 글은 무척 깊다. 중학생 아이들의 마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는 표현들이 자주 나오고 그 표현들이 너무 적절해서 놀라곤 한다. 가령, 정체성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정체성은 사춘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개념으로 사춘기는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 정체성을 친구들 사이에서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모두 하나의 정체성을, 하나의 지분을 얻으려 하는 것(p30)'이라고 표현했는데 나의 그 시절과 아들의 지금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친구 관계에서 얻은 우울한 감정을 벗어나려고 애쓰면서 자조하듯 '날 구하려면 나의 그림자까지 안아야 하는 건가.(p37)'라고 쓴 건 무척 철학적이었다.


작가 박문정도 무척 매력적이지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물고늘어지듯 파고 들어 그것을 해결하려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중학생 문정이는 더 매력적이었다. 낼 수 없는 결론에 비관을 과장까지 해 가며 파멸의 꼭짓점을 향해 나아가는 미디어 속의 불안정의 끝판왕들만 보던 나는 이런 문정이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무척 고맙다고 해야 할까? 부모님은 그저 거들 뿐이다. 앞서 스스로도 생각했던 답인데 부모님과의 대화 끝에 다시 다다른 결론은 자기 확신을 갖게 했을 것이다. 그런 문정이의 평온한 중학생 시절을 응원하고, 작가 박문정의 도약을 기대한다.



난 남을 보기 전에 나부터, 내 그림자부터 제대로 봐야 해. 그래, 그것부터 해야 했던 거야. 누군가를 동경하기 전에.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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