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 일기] 시와, 독립출판물

by 횸흄

지역 도서관 중에 독립출판물 서가가 있는 곳이 있다. 그 서가를 발견하는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는데 그건 평소 만나기 어려운 대상을 만난다는 설렘과 어쩌면 나도 그 칸에 내 책을 하나 넣어도 좋겠다는 희망이 함께 두드리는 연주였다.


일기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제일 먼저 고른 책은 [바리스타의 일기]인데 판형이나 내용은 보통의 서적들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독립 출판물은 독특한 구성과 판형 등으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책들은 평범한 외양으로 독자를 기다리곤 한다. 처음 눈에 띄는 것은 겉모양이 화려한 책이지만 오래 볼 책은 그래도 내용이 좋은 책이기에 단정한 책의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어쩌면 나 역시 이런 평범한 책 안에 내용을 넣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동지애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을 집어 들고 보니 그 곁에 또다른 일기가 두 권 있었는데 이 책은 외양이 무척 화려한 책이었다. 전통 제본 방식에 표구에 쓰일 법한 패브릭으로 표지를 만든, 내지는 선장제본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꿰매어졌으며 그 안에 한지에 인쇄된 글과 그림이 아름다운 책 [탐라일기]였다. [탐라일기]는 총 두 권으로 베이지색과 남색 패브릭으로 곱게 단장되어 갖고 싶다는 소유욕이 절로 발동되었으나 두 권이면 4만원이라는 어쩔 수 없는 지갑 사정으로 그저 이런 책들을 빌려 볼 수라도 있게 해준 도서관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낄 뿐이었다. 그 외에도 블라인드 북으로 독립출판물을 한 권 더 가져왔는데 '이거슨 운명'이라는 표현에 맞게 집에 와 끌러보니 같은 작가의 제주도 버스 여행법을 담은 책이었다. 내가 [탐라일기]를 고를 줄 알았나? 내가 운전을 못한다는 것을 눈치챘나? 싶을 만큼 블라인드인데 블라인드 같지 않은 선택이 신기했다.


아름다운 것을 보지 않고 숨겨두기는 어려운 법, 집에 오자마자 빌려온 책들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칠퍼덕 앉아서 두 권을 내리 읽었다. 제주에 대한 책을 세 권이나 독립출판한 작가이지만 제주에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주에 추억이 많아 [탐라일기]에서는 제주에서의 여행담은 한가롭게,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은 진하게 담았다. 열애 중인 사람들보다 더 애절한 사랑이 느껴지는 일기들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자조적이고 푸념적으로 담겨있지만 제주의 풍경을 그린 그림들과 함께 정갈한 시로 쓰여져 읽는 사람조차 이 사랑이 끝이 아니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잠시만 안녕'일지도 모른다는 나의 기대는 두번째 책의 마지막 일기를 읽으며 깨지는데 어쩌면 작가도 이 책을 만들며 마음의 정리를 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름다운 시간을 아름답게 되새기며 정리를 하면, 그 시간은 그저 아름답게 기억될 뿐 다시 살아올 필요는 없어질 테니까.


<<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그 사람을 만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


작가가 옛 연인과 세번째로 제주를 방문할 일은 없겠지만 이렇게 고운 탐라일기를 한 권 더 맛보고 싶은 건 독자의 마음. 세 권이 합본으로 나와도 참 좋겠다. 제본가라는 직업에 맞게 책이 너무 아름답게 꾸려져 왠지 나도 손제본을 배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으니 이내 웃고 말았다. 그러기엔 내 손재주는 너무 박하다. 남의 것을 따라만 하다가 언제 내 것을 만들까?하는 마음도 들어 잠시 씁쓸해 하며 남의 재주만 탐내는 나를 꾸짖어 본다.


요즘 읽고 있는 아니 에르노의 [칼같은 글쓰기]에는 그녀가 쓰는 일기들에 대해 여러 번 언급을 하는데 그중 [밖에서 쓰는 일기]라는 책을 읽어보고 싶다. [탐라일기]의 작가 시와도 말했지만 일기를 세상에 내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부끄러운 일인데 애초에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대상을 맞이하는 일기를 쓰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로 그런 일기가 지금 내가 쓰려고 하고 앞으로도 쓰고싶은, 내가 꿈꾸는 일기의 방식이다. 제목도 참 좋지 않은가? [밖에서 쓰는 일기]라니.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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