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일기]방황만 40년째

by 횸흄

중학생 때 농구 실기 평가를 보는데 선생님께서 자세가 좋다고 칭찬하셨다. 하지만 농구는 거기까지, 딱 자세취하는 정도까지만 칭찬을 받았고 이후 골을 넣는다거나 기술이 는다거나 하는 향상이 더뎠다. 당시 체육 선생님께서는 나더러 말처럼 생기고 자세도 좋아서 운동을 잘 할 것 같은데 막상 시키면 보통 이하라 놀랍다고도 하셨다. 나도 안다고요! 대학원 입학 후에는 교수님께 "왜 저를 뽑으셨어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단체로 학회에 가던 버스 안이었던 것 같은데 다정한 이 교수님은 "네가 글을 잘 썼어." 지식은 없었지만 비문이 좀 적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 내 글의 비문을 보면 납득이 안 가겠지만 교수님 왈 문장까지 가르쳐야하면 너무 힘드시다나? 그걸 칭찬으로 들었는데 알고보면 다른 지원자에 대한 핀잔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 말이었나 모른다. 또 이런 일도 있다. 대학원 수업을 듣던 중이었는데 김 교수님은 꽤 상기되어 내 동화평론이 괜찮다고 칭찬하시며 옆의 다른 교수님께도 읽게 하셨다. 나도 글을 쓸 수 있을까, 기대를 하며 고무된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후 나의 글에 대해 "넌 왜 맨날 시작이 똑같냐?"라고 금세 질려하시고 그뒤로는 글에 대한 칭찬을 받은 적이 없다. 아, 이런 용두사미같은 나의 자질은 지금까지도 나와 함께 한다. 처음 시작은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는 것 같은데 왜, 왜 안 느는거야?


내가 잘 하는 것의 목록을 써 보기로 한다. 내 마음을 구체적 언어로 잘 표현한다. 그런데 기승전결이 잘 드러나게 유려한 한 편의 이야기로 표현하기 보다는 즉흥적으로 받아치는 데에 더 강점이 있다. 자세를 바로 하고 호흡이 긴 글을 써 나아가는 데에는 젬병이다. 재미없기 짝이없다 마치 이 글처럼. 달변가라는 말을 잘 듣는데 그것도 즉흥적인 것에 한해서이다. 한 호흡으로 길게 말하거나 쓰는 것에는 소질이 없다. 생각만해도 갑갑하고 두렵다.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관련이 있을까? 혼자 수업을 이끌어가야하는 일이 아니라 티키타카를 주고 받아야 하는, 말의 고삐만 내가 쥐고 있을 뿐 말이 달려가고 말고는 순전히 말에게 달려있는 그런 언어활동을 20년간 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렇게 미루기엔 중학교 때부터 글쓰기 전 개요를 못 짰던 것 같다. 내 표현력은 그러니까 단순 대응에만 강점이 있는 게 아닌가?


그 다음으로 즉흥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변경하는 데에 더 능하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많지만 그 시행착오를 바로바로 수정하는 융통성이 좋다. 언제나 시행착오와 임시변통으로 지내다보니 지루하진 않지만 불안정하다. 아이들도 나 때문에 점점 더 산만해지는 건 아닐까 이런 합리적 의심을 한다. 이러저리 애쓰는 내 모습이 열정적으로 보이는지 옆반 선생님들은 '천상 교사'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그건 속도 모르는 말이다. 난 언제 그만두어도 전혀 자질이 아깝지 않은 상태이다. 그걸 20년이나 했다니 부끄럽고 미안하다.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지만 위기는 생각보다 자주 오지 않으니 나의 융통성은 자질구레해진다. 쓸모없는 자질은 아니지만 내가 글을 쓰는 데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아이디어도 성한 편이라 수업에 재밌는 활동을 많이 끌어온다. 동료들이 가끔 나의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내곤 한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요?"라던가 "선생님은 정말 아이디어가 좋다."라고. 심지어 우리 아들도 "엄마는 진짜 재밌는 생각을 많이 해내."라고 인정한다. 공개수업을 할 때에도 아이디어가 넘친다. 수업 목표와 교과 외부의 것을 잘 매칭시킨다. 문제는 그렇게 계획을 잘 짜는데 실연은 잘 못한다. 몇년 전 합이 굉장히 잘 맞았던 동학년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보니 한 동료가 실제 공개 수업을 정말 잘 했다. 이를 테면 내가 감독이고 그 동료가 배우인데 NG 한 번 없이 한 번에 OK 사인이 나는.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이이고 일상 생활 속에서도 궁리는 좋은 것 같은데 꿰어지질 않는다. 이런 걸 산만하다고 하나?


내가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방황만 40년 째이다. 내가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잘 아는데 그 간극을 좁히기가 좀체 어렵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다. 아이들 시험지를 나눠주다 가벼운 시험지가 바람에 날려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본능적으로 낚아채 씨익 웃으며 아이에게 건네주니 그 아이 왈 "그냥 놔 두시지 다 구겨졌잖아요!". 그래 쓸모없는 순발력이다! 쓸모없는 아이디어이고, 융통성이고, 재간이다, 하는 회의가 든다. 한 가지를 진득이 못하는 성질은 내 탓인지 아이를 키우고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건지 모르겠다. 후자라고 믿으면 언젠가 내 시간이 생기면 나아질까 기대하게도 되지만 왠지 진실은 전자일 것 같다. 그럼 나는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그때를 놓치면 다시 시를 쓰지 않을 것 같아 시 합평 모임에 들어갔다.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난 그 시절이 내가 가장 반짝였던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반짝이기 위해 내 방황의 키를 조절하고 싶다. 발 없는 새 마냥 바람 속에서 쉬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