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일기] '여기' 밖의 내가 너무 좋아

by 횸흄

아이들에게 '역마살'의 뜻을 물으면 열이면 열 고기의 어떤 부위로 대답한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냐의 문제지 그 외의 것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이들의 어휘력과 문해력 따위를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그 질문의 시작은 그것이었으되 그 질문의 끝은 뜻풀이가 아니라 늘 나를 향해 있다. 문답의 과정 끝 즈음에 가면 나는 언제나 눈빛이 아련해지는데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내 삶을 좀 자유롭게 운전하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그러기엔 내 직업은 너무나 단단하게 박혀있다.


대학을 다닐 때 한 교수님께서 "너희들은 안 됐다. 전부 다 교사가 되는 거잖아? 다른 길은 시도도 못 해 보고." 그전까진 그 교수님을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 질문을 받고부터는 사람이 달라보였다. 죄다 우리의 안정적인 입장을 감사히 여기라는 사람들만 있었으니까 이런 시각은 충분히 색달랐고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특수목적대학이라 다른 직업은 고민할 기회도 없이 교사가 된 나에게 스스로 왜 여기에 있냐는 질문을 자꾸 던지게 했으니까. 넉넉치 않은 집안에서 딸을 교대에 보낸 이유는 단 한 가지, 안정된 급여 때문이지 그 까닭에 자식의 적성이나 흥미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심지어 이름도 처음 들어본 도시에 살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과는 무관하게 학교 다니기가 무척 싫었다. 심지어 그런 배부른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 타박에 입밖에도 쉽게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마음은 이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나 존중감과는 다른 문제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체육복을 입은 채 운동장을 돌고(다른 과 친구들은 자벌레 흉내를 내며 강당 바닥을 기어다녔다는데 다행히 그건 면했다.), 그리고 싶지도 않은 그림을 그리고, 치지도 못하는 피아노를 독수리타법으로 쳐야하는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게 무척 답답했다. 대학생이되 대학생이 아닌 기분, 우리 대학교가 중학생 드라마 <사춘기>의 촬영 장소가 된 것을 알았을 때 그럴 만하다고 느꼈던 그 기분으로 지냈다. 나는 정말 교사가 되고 싶을까?


20년간 '이 길이 진짜 내 길일까?', '그렇다면 내 길은 뭐지?'와 같은 질문을 숱하게 던졌다. 남들은 대학생 때 취업을 준비하면서 한 뼘 성장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되다보니 뭔가 석연찮은 채로 이렇게 많은 길을 와 버렸다. 옛말에 남들 하는 건 다 해 봐야 한다더니 그 말엔 방황도 포함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교사 집단 외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모색해왔다. 어디서 용기가 났나 온라인 동호회에도 가입해서 잠시 활동하고, 어릴 때에도 안 하던 오빠부대에도 합류했다. 학교 밖의 활동들을 하면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아이를 낳고 집에만 있어야 했을 때 시인이 되겠다고 합평 모임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랬고 그 이후 학교로 다시 돌아와서도 나는 자꾸만 내가 있는 곳의 바깥에서 나를 찾는다. 어떤 사람들은 머무는 그 자리에서 자신을 찾아가며 잘 적응하고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는 내가 머문 그 자리에서는 나를 찾지 못하는지 어떤 때에는 자신이지만 퍽 번거로운 인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막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사람만 역마살이 있는 게 아니라 내적인 역마살도 있는 모양이라고 나름의 정리를 해 본다.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 그간의 행적이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생활에도 도움이 되곤 한다. 학교 안에 머무른 사람들보다는 사고가 유연한 편이고, 이곳저곳에서 귀동냥한 내용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퍽 쓸 만 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바깥의 활력이 안에서 여유를 만든다는 점이다. 요즘엔 독서 모임을 전방위적으로 하고 있는데 독서 모임마다 구성원들이 달라서 그들과 각각의 대화를 나누고 나면 풍요로운 마음이 느껴진다. 그때 획득한 마음을 내가 머무는 곳에서 풀어놓으면 어쩔 수 없이 다정해진다. 그때 획득하는 마음은 설렘, 호기심, 만족감, 뿌듯함 등인데 이 마음들이 내 안에 머무는 동안은 미간도 펴지고 입꼬리도 올라간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그 몸에 딸린 마음마저 '여기'에 다 모여있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여기가 아닌 곳'에 나를 데려다놓는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무더기로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건 질색을 하는 편이었고 그건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설레고, 궁금하고, 뿌듯한 마음은 사람으로부터 얻는다. 매일매일 지지고 볶는 주변 사람은 소중하지만 그들이 내게 주는 것은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거의 같은 비율로 섞여 있다. 나는 나쁜 마음이 들려는 나를 살짝 '여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 좋은 마음으로 바꿔온다. 그것이 나의 역마살의 방향이다. 어디로 갈지를 정해놓지는 않지만, 그래서 나쁜 마음이 더 나쁜 마음이 되어 오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떠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역마살을 지닌 사람의 생존 본능이니까. 지난 한 주 '여기'의 나는 몹시 피곤했다. 아들은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나는 출근을 위해 48시간만 유효한 검사를 몇 번 해야 했고, 우리 반 아이들은 가족이 확진되어 자가격리되고, 졸업식 준비와 성적 처리를 동시에 해야 하는 일정, 게다가 게으른 나는 진도도 늦다, 세상에! 그런 나의 괴로움이 지난 주말에 좋은 공간과 사람에 의해 '견딜 만 한' 일이 되었다. 그러니 떠나지 않을 턱이 있나? 몸만 쉰다고 휴식이 아니라 마음이 풀려야 휴식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좋다. 그냥 '여기'를 잠시 벗어나 좋은 마음을 가져올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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