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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키 Nov 21. 2023

동네 김 반장

 날은 춥고 깜깜한데 아까부터 온다는 남편은 깜깜무소식이다. 기다리다 어느새 잠들었는지 눈을 떠보니 새벽 4시. 옆자리는 여전히 온기 없이 차가웠다. 더듬더듬 휴대전화를 찾아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통화버튼을 꾹 눌렀다.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여보세요?”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변이 시끄러워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어디야?”“응, 파출소에 와 있는데 별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자” 대답도 하기 전에 전화는 끊어졌고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받지 않았다. 

 불이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더디게 가는 시계를 자꾸만 쳐다보며 현관문만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7시 15분 전 “띠리릭.” 현관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눈을 크게 뜨며 신발을 벗기도 전에 따지듯이 물었다. “잠시만….”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있는 그를 문 앞에 지키고 서 있었다. 언제 말하려고 그러는 건지 계속 뜸을 들였다. 내 눈총이 따가워 더는 버티지 못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대충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집 앞 현관에 들어오는데 중,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네, 다섯 명이 골목 후미진 곳도 아니고 입구에 버젓이 서서 담배를 피우며 바닥에 침을 뱉어 모으고 있었다. “담배 끄고 가라” 했더니 “씨발”로 대꾸했다. 그다음은 굳이 듣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이 갔다. 머리를 쥐어박으며 욕을 하니 한 녀석이 파출소에 신고했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몇 대 더 때렸단다. 

 학생들의 부모님이 오셔서 죄송하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는데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중학생 녀석들을 보면서 너무너무 화가 나 파출소에서도 한참을 핏대를 세우다 온 것이다. 우리 집 마초는 이런 사람이다. 화가 나면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또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건 ‘싸가지’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거슬렸고 그래서 행동했고 결과는 ‘벌금’을 내는 참담함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이런 남편이 싫었다. 남의 일에 오지랖 넓게 왜 신경을 쓰냔 말이다. 중2가 무서워 북한이 쳐들어오지도 못한다는데 왜 경찰들이 해야 할 일까지 나서서 일을 벌이는지 그렇게 하고 싶으면 정당하게 할 수 있는 경찰이 됐어야지! 

 어떤 날은 대리운전 아저씨의 사연을 듣다가 불쌍해 외투를 벗어주고 또 어느 때는 길거리 할머니가 파시는 이름도 모르는 풀들을 다 사서 들어와 ‘무쳐 먹으면 맛있대’ 하고 건네는 남편,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매일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나의 인생은 어지러웠다. ‘욱’하는 성격으로 사고라도 칠까, 싶어서 어느 자리에서건 긴장이 됐다. 이유 없이 그러는 것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나는 정의로운 사람보다 바보온달이 좋았다. 잘못 선택한 결혼 생활은 늘 불만과 위기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맞춰 살아 보겠다며 안간힘을 쓰는 데 늘 노력이란 것을 나만 하는 기분이 들었다. 

 출산 후 스트레스는 산후 우울증과 부부의 권태기로 찾아왔다. 나는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은 늘 술에 취해 귀가했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날들은 가슴에 멍을 키우고 늘 새로운 두려움을 만들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가는 오빠 뒤통수에 대고 “여행 가고 싶어.”라고 건조하게 말했다. 오후에 다음 날 출발하는 홍콩행 비행기표와 호텔이 예약된 문자를 받았다. ‘아, 이런 사람이었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다 들어주는 사람.’ 

 나는 ‘알겠어’라고 짧게 답장을 보낸 후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밤새 들떠 잠을 설쳤다. 더 누워 있어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조용히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어제 싸다 만 짐들을 마저 싸고 나니 벌써 8시다. 범이가 깰까 봐 조용히 남편을 흔들었다. 눈을 뜬 걸 확인하고 나는 화장실로 갔다. 출발 전 거실에 세워둔 커다란 트렁크 2개에 보고 오빠는 놀라는 눈치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랜만에 한껏 멋을 부렸다. 아찔하게 짧은 검정 미니스커트에 빨간색과 핑크의 짜임이 예쁜 오 버핏 니트를 입고 머리는 세게 웨이브를 넣었다. 젖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만 흥분하니 가슴에 찌릿찌릿 전기가 흘렀다. 공항에 도착한 후 수속을 마치고 탑승 후 앉자마자 눈을 감았다. 옆자리의 남편은 그 옆의 누군가와 금세 또 친해진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내 신경을 거스르게 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떠나오니 한국과 다른 공기마저도 좋았다. 집에 두고 온 범이가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다. 홍콩의 야경이 그렇게 만들었고 오랜만에 낯선 장소에서 술을 마시며 오른 취기에 몸을 맡기고 살을 맞대는 것도 꿈속 같았다. 무엇보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이 순간만큼은 첫 만남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여자 김보현이었다. 

 3박 4일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편이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했다. 기울어진 사업을 혼자 힘으로 일으켜 보겠다며 중국인들과 함께 공용침실에서 생활했던 믿음직한 남자. 하루의 고단함은 편의점 맥주 몇 캔으로 달랠 수 있는 털털한 남자. 기름값 아끼겠다며 2~3시간을 걸어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도 어깨 쫙 펴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상남자. 그런 사람을 자꾸만 내 꼭두각시를 만들려는 못된 버릇을 고치고 그대로의 남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언제나 한결같이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 주는 하나뿐인 영원한 내 편. 나도 그에게 그런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18년 동안 우리는 무수히 많은 고비를 함께 넘기며 전우애를 다졌고 평안한 날들을 보낼 때는 서로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 사이 아이는 넷이 되었고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 천천히 부모라는 이름으로 성숙한 어른이 되어갔다. 

 오늘도 동네 김 반장은 나와 공원을 거닐며 길거리 아무렇게나 넘어져 있는 전동 킥보드들을 가지런히 세워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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