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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Feb 26. 2024

Just do it

‘그냥’ 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재능이다. 

학창 시절 공부가 하기 싫어지면 동기부여 영상이나 문구들을 훑어보곤 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짤 중의 하나는 김연아 선수의 훈련 중 인터뷰 내용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칭을) 하세요?”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한 분야에서 최정점에 있는 사람이 연습할 때 하는 생각은 목표에 대한 갈망이나 다짐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그냥, 그 어떤 고민도 없다. 그저 몸을 움직일 뿐이다. 



김연아 선수가 아니더라도 주변에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면 비슷한 답변을 한다. 그냥. 흥미가 없는데 어떻게 그냥 할 수가 있을까. 의문을 질문으로 표출하면 그들을 이렇게 덧붙인다.


“무슨 재미가 있어서 하겠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나는 모르는 매뉴얼이라도 있는지 이런 대답을 할 때면 하나같이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냥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와 그들이 속한 세계가 다름을 한 번 더 깨닫는다. 이미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는 ‘어려울 거 하나 없어. 그냥 하면 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로 들린다. 기만. 이래서 ‘그냥’을 싫어한다. 그냥 해내지 못하면 부진아가 돼버린다. 이유라도 있으면 나을까 싶어 그럴싸한 명분들을 갖다 붙였지만, 어느 것도 행동으로 이어질 만큼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하기 싫으니 잘할 수 없고 잘할 수 없으니 어렵고 어려우니 재미없고 그 악순환이 계속 이어졌다. 그냥 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하고 있을 때마다 속이 메스꺼워지고 머리가 아팠다. 날 때부터 나란 인간은 게으르고 의지박약으로 태어나서 끈기는 찾아볼 수 없는 걸까. 다른 사람은 그저 묵묵히 본인의 몫을 하고 있는데 왜 나는 그들처럼 하지 못할까. 자책하는 순간이 늘어날수록 무능함이 뼈에 사무쳤다.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면서 일을 못 할 수만 가지 이유를 대고 있는 내가 싫었다. 당장이라도 모든 걸 때려치우고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그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를 싫어하는 게 일상이 되었을 시기에 취업하게 되었다. 해야만 하는 일에 무게감이 점점 커져 잠자리에 들 때면 다음 날이 오지 않기를 자주 바랐다. 부담감을 떨쳐내기 위해서 본업과 관련 없는 일을 했다. 지속성은 없지만 다양한 일회성의 경험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흥미가 있는 일을 찾길, 의미가 있는 일을 찾길,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찾길. 드럼을 배운다고 드러머가 되거나 방송 댄스를 배운다고 해서 댄서가 되지 않겠지만 새로운 걸 배우면 어떻게든 길이 보이지 않을까 했다. 처음 하는 일이니깐 못해도 상관없고 결과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즐기는 과정만 있으면 되는 일들을 했다. 



글쓰기도 그런 일 중의 하나였다. 큰 계기나 열망이 있지 않았다. ‘한 번 해보자.’ 책 읽는 습관을 지니면 좋은데 혼자 읽으면 안 읽을 테니 독서 모임을 나가야겠다. 독후감 안 쓰면 모임에 못 나가는 시스템이라. 강제성이 있으면 좋지. 이왕 쓸 거 1,000자 정도는 써야지. 말하는 거랑 쓰는 건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이 어렵지 않았다. 초등학교 이후로 일기도 안 쓰는 사람이라 읽든 쓰든 활자랑 관련도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모임에 가서 내 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감상을 마주했을 때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칭찬을 처음 받아본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피하고 싶은 민망함이 아니라 진심인 말들의 면역력이 부족했다. 인사치레라고 의심하면서도 사람들의 말을 사실로 만들고 싶었다. 이런 열망이 넉 달 동안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쓰게 했다. 살면서 이렇게 몰입하고 끈기 있게 일을 한 적이 있나 싶었다. 금전적으로 보상이 되는 일도 아니고 안 한다고 페널티가 있는 일도 아닌데 이전의 일들처럼 갖다 붙일 수 있는 명분이 없는데도 나에게는 글쓰기가 흥미로웠고 의미가 있었다. 모임이 끝난 이후로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한 달에 하나씩 글을 쓰고 여전히 글 주위를 맴돌고 있다.



어떤 일을 몰두해서 하는 사람을 봤을 때 그의 하루는 가슴이 뛰고 설레는 일로만 가득 차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글쓰기를 열심히 했던 때를 생각하면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과는 달랐다. 글을 쓰면서 웃음 짓는 날보다 괴로워한 날이 더 많았으며 직업 작가가 아닌데도 부담과 강박에 짓눌린 적이 많았다. 고통스러운 일의 연속인 글쓰기를 계속한 건 멈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글을 쓰는데 거창한 이유나 목적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건 하다 보니 따라오는 것들이었다. 숙명과 운명, 의무와 사명. 어느 누가 나한테 준 게 아닌데 스스로가 짊어지는 굴레. 무게가 있지만 버겁지는 않았다. 무겁지만 그걸 짊어질 힘을 키우고 싶어졌다. 글에 대한  열망이 서서히 쉬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인과관계를 찾기 어려운 사건을 맞닥뜨리면 운명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글쓰기가 그랬다. 운명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운명인 글쓰기를 이제는 내 능력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다. 남들보다 얼마나 뛰어나며 감이 타고났다는 말이 아니라 김연아 선수의 피겨처럼 나는 글쓰기를 그냥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게 기본값이 되어 쓰지 않은 나를 상상할 수 없다. 글쓰기가 이전과는 다르게 삶에서 멀어졌다고 실감하는 날에는 내가 아닌 것 같다. 나의 일부가 손상된 느낌에 얼른 나의 모습을 되찾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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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가 끝나고 다음 날 출근을 앞둔 황금 같은 일요일 밤, 키보드 앞에 앉아서 생각을 글로 적고 단어를 바꾸고 문장을 손본다. 어떻게 그렇게 부지런하냐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냥 하는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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