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둘째였던 오빠는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어릴 때 한 번 크게 열이 오른 적이 있었고
부모님은 그저 아이가 잠든 줄 알고
그 상황을 심각하게 보지 못했다고 한다.
마침 집을 방문한 지인이
오빠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말해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을 때는
이미 뇌 손상이 생긴 후였다.
그날 이후 오빠의 시간은
다섯 살 즈음에서 멈추었다.
그 마음과 그 지능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엄마는 그때도 매일같이 일을 해야 했다.
새벽마다 집을 떠나고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삶이었으니
사고를 치는 오빠를
집에 혼자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린이집인지 유치원인지
어떤 기관에 오빠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어린 기억 속에서 가장 또렷한 장면이 남았다.
기관에 가기 싫다고
길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 버티던 오빠를
엄마가 울며 달래고, 또 끌고,
결국 억지로 문 안으로 데려갔던 그날.
오빠는 온몸으로 울었다.
몸부림을 치고,
땅을 굴러가듯 버텼다.
그 울음은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
그때 나는 겨우 세 살, 네 살 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날의 바람, 오빠의 울음,
엄마의 숨소리까지
모두가 내 몸에 새겨져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지금의 엄마는
그날을 기억할까?
작은 아이를 억지로 끌어안고
기관 안으로 밀어 넣던 그 순간을
밤마다 미안함으로 다시 떠올릴까?
아니면
너무 힘들었던 시절이었기에
그 장면이 엄마 마음에서
어느새 흐려져 버린 걸까?
쉰 살이 된 오빠를 볼 때면
나는 여전히
그때의 오빠가 먼저 떠오른다.
누워버린 작은 몸,
끝까지 버티던 작은 팔과 다리,
그리고 어른을 향해 울부짖던 절망 같은 울음소리.
그 장면은
지금도 내 안에서 울고 있다.
그래서 오빠를 볼 때면
안쓰러움과 미안함과
어쩌지 못하는 슬픔이
늘 함께 찾아온다.
마치 그날의 기억이
지금의 나를 다시 끌어당기는 것처럼.
어쩌면
내가 오빠에게 느끼는 감정보다
그날의 어린 내가 느꼈던 충격이
더 오래 나를 붙잡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의 선택들이 이해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아직도 마음 한편엔
작은 서운함과 오래된 상처가 남아 있다.
엄마가 우리를 두고 일하러 나가야 했던 새벽들,
오빠를 붙잡고 울던 날들,
어린 나를 혼자 남겨두고
다시 빠르게 달려가던 발걸음들.
나는 지금도 그 장면들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아직은
엄마의 마음 전체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도 엄마가 되고,
나도 삶에 맞서는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다.
엄마도 그 시절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벌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삶에서
사랑만으로 아이를 지킬 수 없었다는 사실을
엄마는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지금도
엄마의 그때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그 대신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믿음을 품는다.
삶을 더 살아보면,
내가 더 많은 하루를 통과해 보면,
엄마가 감당해야 했던 무게가
조금씩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 무게를 들여다볼 만큼
내가 더 단단해질 날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가 되면
어쩌면 나는
엄마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대신
조용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도 힘들었지.”
“그때의 선택도 사랑이었지.”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아직은 멀었지만,
나는 그날이 올 거라 믿는다.
엄마의 마음 전체가
나에게도 언젠가
조용히 도착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