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누군가의 품에 오래 머물러본 기억이 거의 없다.
엄마는 새벽마다 목욕탕으로 나가셨다.
어둠이 아직 거두어지지 않은 시간,
문이 닫히는 소리만 남기고 사라지는 엄마의 등.
아이였던 나는 언제부턴가
그 소리에 잠을 깨지 않을 만큼 익숙해졌다.
아빠는 늘 사람들 틈에 있었다.
집보다 밖이 더 편한 사람.
언제 들어오는지보다
언제 또 나갈지가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집은 항상 비어 있었고,
그 빈자리엔 싸움의 그림자만 남아 있었다.
삼 남매 중 막내였지만
막내답게 굴어본 기억은 별로 없다.
누군가를 기대기보다
내 감정을 먼저 접어 두는 것이 생존 같았고,
눈치 보는 법은
그 어린 나에게 가장 먼저 배운 기술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누군가를 기다렸고,
누군가의 손길을 갈망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어 본 적은 없었다.
말보다 침묵이 더 안전했던 시절.
그렇게 자란 나는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린 나를 품는 법을 모른다.
괜찮은 척하는 데 익숙하지만
마음 깊은 곳은 종종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서 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후,
나는 오래 묵혀두었던 한 문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나처럼 자라는 아이를 만들지 않겠다.”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며
나는 내내 조심스럽고 불안하다.
한부모라는 사실이
아이의 삶에 상처로 남지 않을까
밤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든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나는 내 부모가 줄 수 없던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대어본 적 없는 내가
아이를 품으면서
비로소 ‘사랑을 배우는 중’이라는 사실.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가
돌봄을 배워가는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또 다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야기.
그것이 지금의 나고,
앞으로 써 내려가고 싶은 이야기다.
아이가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는 어릴 때 많이 외로웠어.
그런데 너를 키우는 동안
엄마 안에 남아 있던 빈자리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따뜻한 것으로 채워졌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