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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변 Feb 06. 2024

돌고래인간이 살아있다 (영안실 시체 닦는 알바)

돌고래인간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방법

가난 페스티벌 본선 진출 패밀리


가난이 무지하게 싫었다. 이 놈의 가난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명이었다. 누구는 태어났는데 앞에 일확천금이 놓여있고 누구는 돌 반지로 쌀을 사 먹어서 돌 반지를 구경하지도 못했다. "가난 페스티벌"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난 뽐내기 대회가 있다고 치자. 쪽팔림을 무릅쓰고 우리 집이 나간다면 예선 통과는 확실하고 본선 진출 패밀리로 뽑혔을 것이다.


그 패밀리 안에 가난이 죽도록 싫어서 공부하여 성공하려는 학생이 있었다. 학생은 명문대 가려고 노력했지만, IQ가 돌고래 수준이어서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안 나왔다. 바로 우리집 그리고 나의 이야기다. 가난한 집의 고생사에 머리 나쁜 학생 이야기로 양념을 치면 우리 집은 맛깔스러운 스토리로 가난 페스티벌에서 "본선진출 + 격려상"의 2가지 상은 분명 탈 것 같았다.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돈이 없는 현실 때문에 종종 포기하고 싶었다. 성적이라도 잘 나와야 신이 날 텐데... 아무리 공부를 해도 노력한 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항상 비참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가출해서 돈을 버는 게 나을까 고민도 했었다. 하늘을 참 많이 원망했다. "가난하게 태어났으면 평범한 수준의 두뇌를 주시지 왜 돌고래 IQ를 내려주셔서 나는 이렇게 고생을 할까?"



시체 닦는 알바 도전


고등학교 때 영안실에서 시체를 닦는 알바가 엄청난 고임금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전에도 장례절차 중에 염을 하기 전 고인의 몸을 닦는 과정이 있다고 알긴 했다. 한 구에 얼마라는 얘길 듣기도 했는데 금액이 실로 엄청났다. 그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한다면 공부와 돈벌이를 둘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고인을 편안히 보내드리는 숭고한 일인지는 생각도 못하고 돈벌이로만 생각한 철부지. 돈 없는 무소유 학생이 아니라 뇌를 무소유 한 것처럼 경솔하게 접근했다.


알바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는데, 친구의 얘기를 듣고 공포에 휩싸였다. 친구 최정진이 말했다.

"시신을 닦다가 시신에 있는 가스가 차서 하마터면 시신이 강시처럼 일어나는 경우도 있대"

라는 충격적은 이야기를 듣고 쫄보가 됐다. 하지만, 당장 문제집 값이 없는데 공부를 해야 하는 현실은 쫄보를 광개토 대왕처럼 용감하게 만들었다. 그 알바를 하면 문제집 살 돈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같은 반 친구들을 꼬셨다.

"정진아! 형길아! 시신 닦는 알바가 돈을 엄청 번다는데 용돈 필요하지 않니?"

친구들은 사실 별 관심 없었다. 내가 대표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루트를 몰라서 우리 동네 근처의 가장 큰 종합병원에 전화를 했다. 어린 고등학생이 뭘 알았겠는가.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통해 전화 연결음이 들린다.


"안녕하세요 OO병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통화가 연결된 순간 멘붕이 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라는 생각과 함께 용기를 내어 말을 했다.


"저기... 음... 저기 시체 닦는 알바를 하고 싶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떨면서 이야기했지만, 이 정도면 아주 핵심만 잘 말했다. 전화기를 넘어 상당히 놀랐다는 반응이 들려온다. 


"네? 뭐라고요?"

나는 다시 대답한다.


"시체 닦는 알바 구하죠? 제가 하고 싶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분은 중년 정도는 되어 보이는 남자 아저씨였다.

그러는 아저씨는 나에게 아버지 같은 말투로 말을 건넨다.


"여기는 그런 전화받는 곳이 아니에요" 그리고 "어린 학생 같은데 그러지 말아요"

계속해서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이런 전화하는 것 자체가 무언가 사연이 있는 거 같은데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아요"


"아저씨! 고등학생이 얼마나 살기 어려우면 그런 알바할 생각을 했겠어요?"


내가 반대로 아저씨에게 일자리 달라고 졸라댔다. 아저씨께서 본인의 눈물겨운 인생사를 말씀하시면서 꾸준히 열심히 하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위로해 주셨다. 병원으로 한 번 오라고 밥 사주고 싶다고 말씀도 하셨다. 수화기 너머로 전화를 건 철없는 고등학생을 자식처럼 위로해 준 아저씨로 인해 눈가에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살아있음을 느꼈다.


"어린 학생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전화를 했니"

라고 아저씨가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셨다. 전화로 처음 알게 된 아저씨와 나는 흐느끼며 한참을 같이 울었다. 그때 느꼈다. 나는 돈이 필요한 몸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위로가 필요한 "살아있는 몸과 마음"이란 것을...


결론은 아저씨에게 설득당했다. 그날 일은 장례절차에 대한 소명의식도 없고 죽어있는 몸에 대한 예의가 없는 가난한 고등학생의 몸부림으로 끝났다.



살아있음을 느끼다


고인의 몸을 닦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살아있는 몸"부터 닦기로 했다. 상처받은 영혼의 퀴퀴한 냄새도 비누로 닦고 싶었다. 없는 용돈을 털어서 사우나에 갔다. 몸을 닦으면서 "공부로는 내가 원하는 성과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은데 이 짓을 계속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등을 고민했다. 분명한 것은 내 심장은 뛰고 있었고 사우나에선 뜨거운 것이 냉탕에선 머리가 시린 것이 느껴졌다. 역시 "살아있는 몸"이었다.


차라리 죽을 각오로 공부하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성과가 조금 안 나오더라도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참기로 했다. 반드시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위로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천천히 묵묵히 하기로 맘먹었다. 실패는 해도 태도에서 지진 않겠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살아있는 마음"을 발견했다.



죽어있는 몸과 마음에 접근하려다 살아있는 몸과 마음을 발견했다. 이 강력한 대비는 인생 어떤 경험보다 특별했다. 인생은 참 다이나믹하다. 그 다이나믹은 살아있음의 특권이다.




지금도 OO병원 옆을 지나가면 나와 함께 울어주셨던 아저씨가 생각난다. 연락이 닿는다면 아저씨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OO병원 아저씨! 같이 울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죽어있는 몸을 닦겠다고 덤비던 고등학생은 마음이 죽을 뻔했어요. 아저씨의 위로를 통해서 제가 "살아있음"을 체험했어요. 그리고 저 지금 많이 성장했어요. 큰 부자는 아녀도 이젠 가난하지 않아요. 명문대는 못 갔어도 당당하게 잘 삽니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고생하신 부모님께 집도 사드렸습니다. 


성함이라도 여쭤볼걸...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각박하게 살지 않고 주변의 어려운 사람 이야기 들어주고 위로하면서 살게요.


우리 모두는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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