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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변 Feb 13. 2024

돌고래인간이 살던
지하벙커와 4개의 수류탄

지하벙커에 사는 좌충우돌 돌고래인간 이야기 1

반지하 지하벙커 속 4개의 수류탄


오래전 우리 집은 다세대 지하벙커였다. 그 벙커 속에서 가난해도 행복한 아빠, 엄마, 딸, 아들 4명이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티격태격 살았다. 빛이 들지 않는 지하세계라 광합성에 필요한 세로토닌이 부족해서 unhappy였을까? 우리 가족 모두는 지치고 힘들었다.


신기한 점은 누나와 내가 살았던 방은 도로변에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빛이 종종 들어왔다. 하지만, 그 빛은 햇빛이 아니라 밤에만 들어오는 자동차의 전등불 빛. 벙커에 들어오는 자동차 불 빛은 내 방에 그림자를 선물해 줬다. 하지만, 주로 차의 실루엣이 그림자로 비추어졌기에 그리 이쁜 그림자의 형상은 아녔다. 세로토닌 공급에 필요한 햇빛은 안 들어오고 필요 없는 전등불 빛만 들어왔다.


도로변에 인접한 지하벙커의 집은 안과 밖이 모두 시끄러웠다. 밖은 차가 지나는 소리에 시끄럽고 벙커 안은 4개의 수류탄이 서로 안전핀을 뽑으려고 큰 소리를 내는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우리 집에 살던 아니 지하벙커에 살던 4개의 수류탄을 지금 소개해본다.


아빠는 다혈질수류탄이었다. 정도 많고 여린 분이었지만, 자주 욱하는 다혈질이셨다. 아버지의 다혈질은 아버지의 열등감에 기인했다. 아버지는 본인 스스로 가정을 책임지기에는 능력과 용기가 부족한 분이란 걸 정확히 아셨다. 외로웠던 아버지는 차마 가족에게 말 못 할 고민들을 술로 풀어내는 시간이 많았다.

"OO야 아빠는 버림받았다. 할머니에게 버림받고 할아버지에게 버림받고 형에게도 버림받았다"

라는 이야기를 술만 드시면 하셨다.


술과 아버지의 다혈질이 만나면 더욱 강력한 수류탄이 된다. 그래서 어머니는 남편이란 이름의 안전핀이 제거된 수류탄을 손에 고이 감싸서 쥐고 사셨다. 혹시나 수류탄이 터지면 가족 모두가 죽을 테니까.... 그 결과 어머니에게 남은 것은 공황장애. 그 병이 심장질환인지 정신과 질환인지도 모를 시기 1세대 공황장애 환자이시다. 


어머니는 잔소리 수류탄이었다. 성격은 온순하시고 너그러우신 편. 태생적으로 걱정이 많은 엄마는 잔소리가 참 많았다. 걱정이 많으니 사사건건 개입하셨다. 정이 많으시지만, 애교가 없고 쿨하신 분이시다.


"우산을 또 잃어버리는 것은 분명 너의 잘 못이다."

"다른 사람이 훔쳐갔는걸요?" 

라고 내가 항변한다.


"네가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사람이란 것을 숙지하거라." 

"훔쳐가기 좋은 곳에 우산을 놓는 것은 너의 잘 못이다"

라고 나에게 조언하시는 잔소리 수류탄 엄마. 학교에서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건 부주의한 너의 잘 못이다"란 얘기를 들었다.


누나는 방황하는 감수성 수류탄이었다. 큰 소리가 종종 나는 집의 첫째인 누나는 멘탈이 약했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편애로 그녀는 더욱 외로워했다. 사람을 통해서 위로를 얻는 사람이라 항상 밖으로 돌아다녔다. 엄마는 "아빠 닮아서 역마살이 꼈다"며 자주 혼냈지만, 아랑 곳 하지 않았다. 


누나는 어릴 적부터 유독 착했다. 방황을 하더라도 엄마를 걱정하는 소심녀.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떠돌았지만, 수류탄을 폭발시키면 엄마가 크게 다칠 것을 알았다. 방황이라는 원심력과 엄마를 걱정하는 중력의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맞추었다. 원심력으로 튕겨나가지도 않고 중력에만 붙들리지도 않는 아주 독특한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힘의 균형을 맞춘 우리 누나는 수류탄이 아니라 천재물리학자였나?


엄마를 향한 그녀의 고백이 갑자기 떠오른다.

"엄마 그 힘든 시기 버리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키워줘서 고마워요. 나라면 도망쳤을 거야"


막내아들은 까칠남 수류탄이었다. 수류탄 3개와 함께 살며 더욱 예민해진 나. 막내는 불우한 현실에 종종 죽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자랐다. 절대 죽지 않기로 용감한 결심을 한 뒤엔 자살 충동을 단 한 번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독한 마음을 먹고 공부로 성공하려 했다. 문제집에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공부만 했다. 하지만, 지능지수가 돌고래와 비슷하여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고생했다. 최하위권에서 꾸준히 성적이 올라갔지만, 고등학교 진학 이후는 확실한 한계가 보였다. 


인간 돌고래는 더 이상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성실함에 비해 결과가 좋지 못한 분노는 가정환경의 분노와 만났고 대형 수류탄이 되었다. 지금생각해 보면 까칠한 막내를 참아준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고맙다. 의지와 집념이 강한 사람이 아웃풋이 나오지 않을 때, 주변의 사람들은 고통스럽다.



지하벙커를 탈출한 3개의 수류탄


가족모두 최선을 다해 살았다. 잔소리 수류탄인 어머니는 보험, 식당, 요구르트배달, 사무실 취업등으로 쉬지 않고 일하셨고 할머니인 지금도 소일거리를 하신다. "자식들이 잘되고 효도해서 좋겠다"는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인생 후반전을 행복하게 살아가신다.


감수성 수류탄 큰 딸은 어머니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금은 아이 셋 엄마이자 와이프가 되었다. 지하벙커 속 상처로 행복한 가정을 상상하지 못했던 그녀가 애를 3명이나 낳았다. 출산율 절벽의 시대에 국가유공자급 인물이 되었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여전히 사람에게 상냥하고 친절한 그녀는 살갑고 애교 많은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오늘도 치열하게 그리고 달콤하게 살아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막내아들은 까칠남 수류탄이었다. 막내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삶에 대한 투지가 강했다. 모범생을 꿈꿨지만, 모범생이 되지 못해서였을까? 장사, 부동산 투자자, 강사, 마케팅, 세일즈맨 등 을 전전하며 쉬지 않고 도전한다. 평범한 길을 거부한 막내는 3~4년 단위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고질병이 있다. 최근에는 말과 글로 소통하는 일에 미쳐 살고 있고 "돌고래 IQ를 가진 흙수저의 실패 여행기"를 전하며 산다.





지하벙커에서 나오지 못한 한 개의 수류탄


현재 우리 가족은 모두 지하벙커를 탈출했다. 지하벙커를 원망하며 어릴 적부터 내 집마련을 연구했던 나는 대기업을 다녀도 급여로는 집을 살 수 없는 현실을 비교적 빨리 간파했다. 열심히 벌고 투자하여 부모님과 누이까지 신축 아파트에 살도록 도왔다. 지하벙커는 아주 통쾌하게 탈출했다. 수류탄은 터졌을까?


3개 수류탄(아들, 딸, 엄마)은 불꽃놀이 화약정도로 위력이 약해졌다. 햇빛 잘 들어오는 집에서 살아서 세로토닌이 충분한 걸까? 모두 예전보다 행복하게 살아간다. 가끔 폭발음을 내기는 하지만, 이제는 불꽃놀이 수준이다. 시끄러운 폭발음이 나면 필연적으로 형형색색의 불꽃놀이를 뽐내며 "화내서 미안해"라고 사과한다. 그렇게 3개의 수류탄은 오손도손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1개의 수류탄... 다혈질 수류탄.... 우리 아버지....

열등감이 많았던 그는 본인의 콤플렉스를 와이프에게도 꽁꽁 숨겼다. 가령 흉터가 있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결혼 후 10년 이상 어머니에게 감췄다. 나도 그 흉터를 봤지만,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그깟 흉터가 뭐라고. 10년이 지나 아빠의 손가락의 흉터를 확인 한 어머니도 많이 놀라셨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어쩐지 너네 아빠 연애 때부터 이상하게 오른손을 숨기더라. 손을 잡아도 오른손으로는 안 잡았어" 


사실 아버지의 오른 손가락 이야기는 콤플렉스 축에도 못 낀다. 더욱 웃픈 이야기가 많지만, 다음번에 다시 나눠 보기로 한다. 우리 아버지는 콤플렉스가 많았던 만큼이나 외로웠다. 


아버지는 18년 전 지독히 외로운 곳에서 안전핀을 뽑고 폭발하셨다. 돌아가시는 순간도 철저히 혼자가 되어 아주 외롭게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키기는커녕 경찰을 통해 아버지의 비보를 들었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얼마나 아들이 보고 싶으셨을까. 아들을 그토록 이뻐하셨는데...


자녀 둘을 키우는 아빠가 되어보니 가장의 무게가 깊이 공감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인생을 통해 배운 교훈.


열등감은 외로움과 비례한다.


외롭게 살지 말아야지. 열등감 느끼지 말고 할 수 없는 일은 처음부터 못한다고 고백하자. 

아버지처럼 열등감을 폭발시키기 말자. 열등감이 깊어질수록 외로워진다.


아버지께 드리고 싶은 얘기가 참 많다. 천국에서 아버지를 만난다면 3가지를 하고 싶다. 가장 먼저 아버지를 안아드리고 싶다. 두 번째로 외로움을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가 풀릴 때까지 아버지를 놀릴 것이다. 천국은 아들의 놀림과 하극상도 유쾌함으로 승화될 테니...



아빠 안아드릴게요

그 정도로 외로운지 몰랐어 미안

왜 그렇게 꽁꽁 숨겼어? 치사해 아빠 겁쟁이야. 딱밤 한 방 때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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