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의 명목과 실속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by 여문 글지기

퇴직하고 구직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끔 ‘명목과 실속’이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긴 세월 동안 쌓아 올린 직함과 지위가 서서히 옅어지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체면이라는 명목은 여전히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작동하지만, 그것은 허공에 흩날리는 연기와 같다.

결국 삶을 지탱하는 것은 실속, 곧 뿌리 깊은 나무의 뿌리와 같은 내실이다.

논어에서 공자가 말한 “군자는 의(義)를 생각하고, 소인은 이익(利益)을 생각한다”라는 구절은 지금의 삶에도 그대로 어울린다. 겉모습보다 본질을 중시하라는 가르침은, 이제 일상에 새롭게 다가온다.

경제적 준비를 돌아보면, 체면 때문에 과도한 소비를 이어가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퇴직 후에도 남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욕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실속은 의료비와 생활비라는 현실에 대비해 검소하면서도 안정된 재정 계획을 세우는 데 있다. 화려한 외식이나 값비싼 여행은 잠시의 불꽃일 뿐, 오래가지 않는다.

오히려 절약하고 건강을 챙기는 습관이야말로 노후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등불이다.

사회적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의 직함이나 지위를 내세워 관계를 유지하려는 태도는 오래가지 못한다. 은퇴 후에는 직함이 아닌 사람 그 자체로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봉사와 취미 활동,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게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명목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와 같지만, 실속 있는 관계는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아울러 불필요한 낭비도 줄일 수 있다.

여가와 자기 성장의 문제도 있다. 퇴직 또는 은퇴 후 여행, 소비에 치중하는 것은 잠시 즐거움일 뿐, 오래 남지 않는다. 여행 사진은 핸드폰 사진첩에 묻히지만, 독서와 학습, 봉사, 건강 관리 등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나를 성장시킨다.

외국어를 배우거나 악기를 익히는 일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길이 된다. 실속 있는 여가는 나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나무가 해마다 새로운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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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실속이 중요하다. 자녀에게 큰 재산을 남겨야 한다는 압박은 명목일 뿐이다. 그러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고 정서적 지지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가족에게 남기는 가장 큰 유산이다.

손주와 함께 공원에서 걷고, 배우자와 저녁 식탁에서 웃음을 나누는 순간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실속이다. 재산은 세월과 함께 흩어질 수 있지만, 관계와 추억은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그것은 바람에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대나무와 같은 힘을 지닌다.

결국 중장년의 삶은 명목과 실속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에 달려 있다. 겉모습은 사회적 윤활유로서 의미가 있지만, 실속 없는 명목은 공허하다.

논어의 가르침처럼 속을 먼저 세우고 그 위에 명목을 덧입히는 것이 삶을 단단하게 한다. 중장년에게 필요한 것은 체면을 위한 허세가 아니라, 실속 있는 삶을 통해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찾는 지혜다.


오늘도 나는 이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일상의 작은 선택 속에서 스스로 묻는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그 시작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은 결국 실속에 있다.

그것은 마치 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는 나무처럼, 겉보다 속을 먼저 키워야만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진리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