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거리는 늘 있다.
직장에 다니는 서른 넘은 아들이 독립을 하지 않아서, 아직도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생활리듬이 달라서 이번 주에는 얼굴을 한 번도 못 보았다. 지난 일요일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본 이후로 평일에는 못 보고 토요일 아침을 맞은 것이다.
올빼미형 아들은 내가 출근할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 저녁에는 내가 잠자리에 들고 나면 퇴근하니 서로 얼굴 볼 시간이 없다. 그래도 집에는 꼬박꼬박 들어오니, 초반에는 올 때까지 기다렸으나 이제는 포기하였다. 오늘은 귀가하여 새벽에 열린 월드컵 경기까지 보고 잠자리에 들었을 테니, 점심 무렵에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일정이나 상대가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도 없다. 취업을 하고 나서 독립을 시키려고 했었는데, 사회 초년생의 월급으로는 집값과 생활비 사용하고 나면 미래를 준비할 수 없을 것 같아 당분간이라는 전제로 같이 사는 것이 7년이 되어 간다.
그나마 작은 아들은 직업군인의 길을 택하여 소위 때부터 혼자서 살고 있으니 다행이기는 하다. 장성한 아들 둘이 모두 한 집에서 부대끼고 있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더 다행인 것은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취업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것이다.
남들은 아들들이 서른을 모두 넘겼으니(다 키웠으니) 무슨 걱정이 있느냐 하지만 부모의 마음에 걱정거리는 늘 있다. 지금 가장 큰 걱정은 자식들 결혼에 관한 것이다. 현대 사회가 만혼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하여서인지 도무지 장가갈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아들들 나이 때는 유치원생 학부모였었다.
내가 결혼할 당시에는 일반적이었으나, 지금의 기준으로는 아주 빨랐던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아들 둘을 연년생으로 낳아서, 우리 부부는 서른 전에 이미 출산을 끝냈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시기였지만, 그래도 아들들에게 정성을 들였고 고맙게도 큰 걱정거리 없이 잘 자라 주었다.
이런 말을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라는 말을 듣기 딱 좋다고 하는데,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여느 부모와 다를 수 없다. 나도 이제는 손자, 손녀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고 싶고, 힘이 있을 때 안아주고 싶다. 말동무해주는 귀여운 모습들을 상상만 해도 좋은 나이가 되어 있는 나를 보며 슬며시 걱정이 되는 것이다.
아들은 소위 말하는 ‘MZ 세대’이다.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 부부와는 세대차이가 있기는 하다. 우리는 아날로그 세대이고 아들 세대는 ‘디지털 노마드 세대’라고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도 그만큼 차이가 생긴 것 같다.
핸드폰만 하여도 우리 부부는 그저 무선 전화기라는 용도가 정도라면 아들 세대에게는 스마트폰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생활의 일부분이다. TV를 켜지 않고도 뉴스를 볼 수 있고,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정도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 부부다. 아들은 밥 먹는 중에도 핸드폰 화면을 수 십 번 보아야 안심을 하는 세대이다. 우리 집은 같은 물건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사용하는 두 세대가 살고 있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요즈음의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들은 결혼을 필수적으로 여기지도 않고 출산은 더더구나 삶의 우선순위에서 빠진다고 한다. 직장 내 우리 팀의 여직원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 명은 결혼 5년이 되었지만 아직 출산 계획은 없다고 한다. 같은 나이의 다른 한 명은 아직도 미혼이고 결혼 계획도 없다. 내가 보기에는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인데…….
그런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공감대를 찾기는 무척 어렵다. 그들은 자기 부모의 걱정을 내가 반복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대화에 끼지 못하고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다. 밖에서 있는 일이 우리 집안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아들들도 자기 장래에 대하여 부모가 걱정하는 것을 참견이라 치부하여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마냥 채근할 수도 없다. 결혼을 위하여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해 줄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의 큰 도움 없이 결혼하고, 떠돌다가 집 장만하여 살고 있는데, 자식들에게도 동일한 길을 가라고 하려니 주변 여건이 너무 달라져 있다.
어렵게 출발하여 주변의 동료들과 견주면서 사회생활을 하려니, 출발선부터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자식들의 제대로 된 출발을 위하여 노후준비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 또한 나중에 자식들에게 짐이 될 테니 어차피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다.
그래서 걱정거리는 끝이 없다. 어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 눈앞에 있는 지금에는 결코 방관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어차피 시간이 가면 해결된 문제이고, 나중에 되돌아보면 지금의 걱정이 부질없었다고 웃고 넘길지도 모른다.
지금부터는 이런 걱정거리와 함께 아들과의 생활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일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글로 적으면 문제들이 정리가 되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걱정거리도 적어 놓고 한 걸음 떨어져서 보게 되면 보다 객관적으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