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로 인해 스스로 불행해질 필요는 없다.
유교에서 비롯된 우리나라의 가족 생활상의 변화가 한층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실제 통계를 접하고 보니 ‘인구는 줄어도 가구 수는 늘어난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이유가 1인 가족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여 짐작은 하였으나 더욱 실감이 된다.
‘다세대’라는 말이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쓰이고 있다. 예전에는 할아버지에서 아버지와 손자로 이어지는 3대가 한 집에 산다는 다세대였다면, 지금은 대규모의 아파트보다는 작은 주택 중에 세대별로 소유권을 가진 집을 다세대 주택이라 부르면서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다. 1인 가구주도 세대주가 될 수 있다.
2022년 한국복지패널의 조사 결과 ‘부모는 자식이 모셔야 한다.’는 설문에 찬성응답이 15년 새 53%에서 21%로 낮아졌다고 한다. 반면에 반대의견은 49.14%(매우 반대 7.28% 포함)나 되었고, 찬반 의견을 내지 않은 응답자도 29.4%나 되었다고 한다.
둘째 아들이라는 핑계로, 직업상 타지로 떠돌다가 보무님 계신 곳과는 먼 곳에 정착하였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모시고 있지 않은 내가 함부로 논할 문제는 아닌 것 같지만, 설문결과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나도 늙어가는 것인가.
아들이 둘이 있지만 노후에 아들들에게 기대거나 같은 공간에 거주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나도 핵가족화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문 결과에 대해서는 실망감이 크니 이치에 어긋나기도 하다.
베이비붐 세대인 나와 MZ세대인 아들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상당히 다르다. 나는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아들들 교육에 소홀하지 않았고, 특히 전업 주부인 아내는 훨씬 많은 유무형의 정성을 자식 교육에 쏟았다.
그 결과에 부응한 것인지, 아들들은 재수도 하지 않고 서울의 명문 반열에 들어가는 대학에 합격하였다. 졸업 후에는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직장에 취업도 성공했다. 우리 부부는 최소한 자식 교육은 잘했다고 자부했고, 지금도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변화는 없다.
그런데 아들을 통해 들은 말에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사회에 진출한 아들은 당연히 주변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 중 일부의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출발선상이 다름을 느꼈다는 것이다. 아들은 빈손으로 지금부터 시작인데, 누군가는 이미 물려받은 기반 위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상대적으로 출발이 늦은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는 지방 출신인데 서울의 직장에 취업하여 만만치 않은 생활비로 인하여 거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을 보면서 나의 위치에 안도하기보다는 잘 나가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비교 대상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도 나누어질 수 있고 그 선택은 자신인데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가진 세대들에게 부모를 모신다는 전통 생활상이 합당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맞벌이 부부들의 아이 낳지 않는 이유가 지금 수익을 자신들을 위해 쓸 여유도 부족하여 아이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혼이 늦어지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아들들에게 같은 출발선상에 서도록 해주지 못한 부모인가. 내가 생각하는 출발점과 아들들이 생각한 부분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고, 그것이 현실인 것인가. 단지 비교대상을 잘 못 골라서 느끼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가. 생각이 많아진다.
옛말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었는데, 요즈음은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다고 한다. 그 논리들이 이해가 된다. 지금은 열정과 노력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은 한도가 미리 정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돈’을 버는 것에 다들 열중하는 것인가.
유튜브에는 자수성가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회의 트렌드에 맞는 콘텐츠를 골라서 집중하였고 다시 그 영역을 확장하여 성공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양한 성공 방법들을 공유하겠다고 한다.
그 방법들은 SNS에 글을 올리는 것부터 전자책 발간 및 강의, 전자 상거래, 책 쓰기 등등 다양하다.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고, 따라 해 보고 싶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대부분 성공했다고 하는 이야기만 있고,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부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용이 되었다고 자부하는 것도 자신만의 생각일 수 있고 호객행위의 다른 방법이라는 말까지 있다.
그나마 공통적이고 긍정적인 것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다.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다량의 독서를 통한 방향설정에 눈을 뜬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출발선상이 다른 사람들은 공유공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재력가들의 배경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개천에서 용은 나오고 있고,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아들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비교 대상을 잘 못 골라서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늦은 출발에 더하여 가속을 하는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비교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비전과 목표를 위해서 나만의 아집에 머물기보다는 비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이 길어질수록 만나는 대상은 많아질 것인데, 그 대상들을 단지 비교의 대상으로만 삼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들은 많다. 나갈 길이 창창하니 스스로 선택하여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우선할 것을 권한다.
내가 노후를 자식들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은 만큼, 아들들로 인하여 내 노후가 방해받고 싶지도 않다. 지켜보며 격려하는 응원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부모 세대보다는 넓은 세상에서 다양성과 마주하며 나아가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