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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석 May 29. 2022

#14. ‘드라이브마이카’ 하루키, 체호프, 프롬

‘소유냐 존재냐’ 사브 900을 물려준 까닭은..

1.


“너는 단추를 이렇게 잠가 놓는 게 어울리지 않아. 2개만 풀어.”

“치마보단 좀 꽉 끼는 스키니진을 입어보라고.”


그녀를 만날 때면 입은 옷에 대해 지적을 했다.


마음이 상냥했던 사람이라 그랬을까, 내 마음에 들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무서웠던 걸까.


그 친구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고분고분했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어느덧 별 지적할 필요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새로 산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어울리면 흡족하듯, 그녀를 볼 때면 비슷한 감정이 들곤 했다.


2.


제대 후, 복학했더니 전국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열광의 도가니였다. 우연히 친구 손에 끌려간 PC방에서 처음 접했다. 악마같이 나쁜 놈 행세를 하고 싶었는데, 전에 도서관에서 봤던 악마에 대한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이름 ‘벨가포르’로 캐릭터 명을 정했다.


“야, 난 이제 안 할래. 재미없어.”


정작 나에게 소개한 친구는 한 달여 정도를 함께 전장을 누비다 만렙을 찍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다. 재미가 없기는.. 네가 레이드 가서 아이템을 못 먹으니까 포기한 거지.


그 학기에 학점 2점대 초반을 찍었다.


내 마음에 들게 옷을 잘 입어주던 친구와는 약 1개월 반 동안 약속을 5번 펑크 냈고, 2번을 바람 맞혔다. 레이드가 끝나지 않았지만, 먼저 가야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미안해서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보통 부재중 전화는 2번만 찍혀 있었다.


이틀, 사흘씩 PC방에서 먹고 자는 일이 잦아졌고 모니터 앞의 컵라면 용기엔 남은 국물에 찌들어버린 담배꽁초들이 빨갛게 쌓여 있었다. 용기 하나가 다 찰 때쯤이면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나 오늘 수업 끝나고 선배들이랑 명동에서 영화보기로 했어.”

“응 잘 보고 영화 끝나면 전화해.”


전화는 오지 않았고, 아포 둥지에서 새 타고 날아가는 짬을 이용해 전화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이 날따라 느낌이 싸했다.


명동 지하철역으로 가서 무작정 기다렸다. 1시간 반 정도 기다렸을까, 눈에 익은 실루엣의 걸음걸이가 느껴졌다.


다른 남자의 팔짱을 끼고 고개는 살짝 어떤 놈 어깨에 기댄 상태로 역사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가 후드를 뒤로 젖히며 얼굴을 들이밀었더니 두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놀랐다.


“그게 아니고…”

“넌 닥쳐”


남자 놈의 뒷목을 잡아 한쪽으로 끌고 갔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 녀석의 두 눈을 노려보니 고개를 숙인다.


내가 처음 던진 말은 이거였다.


“얘랑 잤어?”



3.


감각적으로,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내가 던진 그 질문의 천박함을 되새김질할 때면 몸에 닭살이 돋았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인생’이 개봉했다.

썩을.. 3개월만 일찍 개봉했어도 병헌이 형 대사를 따라 하는 건데 차라리…


일본 도쿄 나카노의 구립 도서관에서 우연히 손에 닿은 책을 펼쳐 들었다.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의 사랑에 관한 에세이.


내가 상대를 과연 존재로 대해왔느냐에 대한 자문이 이어졌고, 답은 명쾌했다.


아,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구나.


4.


‘드라이브마이카’


러닝타임이 무려 3시간에 달하는 이 영화는 일본의 떠오르는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작품이다.


아카데미 각색상이 유력하다고 생각했지만, 외국어영화상 수상에 그치고 말았다.


각본상이 아닌 각색상에 노미네이트 됐던 이유는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인데,

본 영화 각본 줄거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단편집에 실려 있는 동 제목의 ‘드라이브마이카’, 그리고 ‘셰예라자드’까지 두 편이 영화에 녹아있다.


여기에 하나를 더 포함하자면,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하루키의 단편에도 극 중 극으로 잠깐 등장한다.


스토리는 큰 뼈대로 봐선 별 차이가 없다. 소설과는 달리, 영화에선 ‘바냐 아저씨’ 연극을 만들어가는 상황과 한국인 등을 포함한 배우들의 이야기가 채색된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일종의 작가 전지적 시점을 견지해 감정이나 판단은 최대한 절제한다.


바람을 핀 아내와, 아내의 죽음, 자신의 작품 속 배우로 지원한 아내의 애인, 그리고 아끼는 애마 ‘사브 900’을 모는 운전사.


배신당했다는 분노는 애초부터 어떠한 식이든 극적인 표출로 나타나진 않지만, 그 마음속의 응어리는 충분히 공감이 될 만큼 전달된다. 이건 가후쿠 역을 맡은 주연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연기와 어딘지 차갑고 암울한 무드를 이끌어나가는 연출력 덕분이다.




아내의 외도를 목도하고도  자체를 외면하면서 겉으론 아무 문제없는 부부처럼 살아가지만, 실은 속으로 썩어 들어가던 . 결국 아내는 “오늘 저녁에 얘기  하자라고 말하고, 드디어   왔다,  이상 회피할  없다고 느꼈겠으나 그날 아내는 뇌출혈로 죽었으니  응어리는 도무지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아내의 정부였던 다카츠키가 하차하면서 가후쿠는 직접 바냐 아저씨를 연기해야 했지만, 바냐 아저씨는 체호프의 극 중에서 어떤 인물인가?

그는 사랑의 실패자이다. 절친이라 믿었던 친구에게 안긴 자신이 동경하는 여성을 목격한 인물. 그는 바냐 아저씨에게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으니 연기를 하기 싫었을 것이지만, 결국 해내야만 한다. 삶은 그런 식으로 회피하기엔 수많은 사람들과 얽힌 실타래 같은 인연의 굴레거든.


어떤 이(극 중의 한국인 배우들)는 그토록 그 소중한 역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말이다.


“삼촌, 우리는 살아가야만 해요”라는 체호프의 주제의식처럼 가후쿠는 이겨내야만 했다. 이 과정을 옆에서 어림짐작하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할 일(대리운전)을 해주는 미사키처럼 말이다.



5.


가후쿠는 왜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사브 900을 미사키에게 넘겨줬을까.


이 부분은 하루키의 소설에선 등장하지도 않는 장면이다. 어떻게 보면 ‘소유냐 존재냐’의 질문에 대해 하루키보다는 류스케 감독이 더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고 느낀다.


더 이상 아내를 자신의 소유로 보지 않고 그녀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게 됐음을 넌지시 표현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혼에서 벌어질 수 있는 외도란 문제, 순결서약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오래된 결혼 관습과 떼내어 상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 배우자가 누구랑 몸을 섞든 자유 의지를 존중하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므로 이런 문제는 무엇이 옳다고 답을 낼 수 없다.


나 또한 이성적으론 내 과거, 상대방을 마치 소유물처럼 대했던 시절을 반성하며 지금의 아내에겐 그러한 언사를 던지지 않고 있으나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나 또한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윌 스미스도 아내의 외도에 대해 자신이 동의한 바라고 실드를 치며 그렇게 말한 바 있지 않나. “우린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고, 그에 대한 결론으로 말하는 바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는 덕목은 아니다”라고.


다만, 문제가 발생했을 시 훼손된 신뢰를 이겨낼 것인지 거기에서 멈춰 끝을 볼 것인지를 판단해야만 하는 상황은 꼭 부부 관계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교제 중인 커플들이라도 거치게 될 수 있는 문제이니 생각해봄 직한 문제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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