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후배들과 한 저녁 자리였다.
한 후배가 자신의 남편과 있었던 일화에 대해 얘기했다.
아이들과 저녁에 밥을 먹다가 남편이 자신의 회사를 욕하면서
“그 회사는 참 하는 거 보면.. 아빠 회사가 훨씬 낫지”라고 말했다는데, 그 말이 그렇게 기분이 상했다고.
후배는 자신의 남편과 같은 업계에 같은 직종에 종사하며 회사만 다르다.
처음엔 이 말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왜 회사를 욕하는 거에 자기가 기분이 안 좋지?’
내 입장에선 회사와 나는 동일시되지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회사란 건… 직원들이 먼저 욕하는 곳 아니었나..?
남들이 욕한다고 해서 내 기분이 나쁠 리가.
내가 공감하지 못하고 갸우뚱거리자,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회사가 돈도 더 많이 주고, 더 좋은 회사라고 애들 앞에서 말을 하니까 그게 기분 나쁘다는 거죠. 둘이 똑같은 일 하는데.”
아, 니 남편이 잘못했네.
2.
대학 시절, 미팅에 나가면 꼭 이런 녀석들이 있었다.
같이 나간 친구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여자애들을 웃기려고 애쓰는 놈들.
여자들은 잘 모르겠으나 내 경험상 남자들은 이러한 ‘까댐의 문화’에 익숙하다.
남자들의 학창 시절은 기본적으로 정글이다. 서로를 놀리고 까대며 방어력을 키운다.
울거나 기분 나빠하면 소위 ‘찐따’ 취급도 받는다.
이런 분위기가 당연시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왜인지 서로 칭찬과 격려를 하는 것은 어색하다.
까댐의 정글 속에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배우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익힌다.
패드립은 주먹다짐으로 끝맺게 되니.
이러한 까댐의 문화가 남자아이들이 자라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100번 양보하더라도,
분명한 건 누군가를 까댐으로써 본인의 지위나 매력이 수직 상승한다고 믿는 답 없는 녀석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이는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가장 열등한 방식에 해당한다.
나보다 강하고 잘난 사람을 보면 어떤 부분이 뛰어난지 배우고 나의 능력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지 않고,
단순히 상대방을 깎아내려 나와 비슷하게 만드는 방식이 빠르고, 쉬우니 말이다.
그러니 친구끼리 까대고 노니는 수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혹은 상대적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까대기를 시전했다면 이건 얘기가 다른 거다.
그리고 미팅 같은 상황에선 팀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여자애들 앞에서 내 친구를 깎아내리고 조롱하며 나의 유머러스함을 뽐냈다고 치자. 여자애들이 웃고 재미있어 할 수 있다. 수위가 더 높아진다. 친구의 얼굴은 붉어진다.
그렇다면 그날 좋은 결과가 따를까?
네버.
화장실 갈 때 같이 가자며 따라온 친구한테 욕먹고 안 맞았으면 다행이다.
당연히 여자애들한텐 같이 바보 되고 끝난다.
3.
부부로 살다 보면 아이들 앞에서 서로의 흉을 보는 일은 생길 수밖에 없다.
“네 아빠는 참.. 어휴..”
“넌 이런 건 꼭 엄말 닮아가지고..”
아이들 앞에서도 부모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족한 점을 알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솔직하게 얘기하고 보여주면 된다.
하지만, “엄마는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아빠보다 열등하다”, “아빠는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엄마만 못 하다”라는 직접적인 비교를 자녀 앞에서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부부가 육아를 함께 하는 팀으로 보자면 팀킬인 셈이다.
그런데 원초적으로 돈벌이나 학벌, 외모, 출신, 배경 같은 걸로 아이들 앞에서 배우자를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로 만든다?
이건 뭐 학교 다닐 때 미팅 한 번 안 나가본 건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