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by 박기숙


전날 삐끗한 허리로 하루아침에 구급차를 타고 입원하게 되었다.

모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했다. 이유는 몇 해 전 수술한 이력이 있어 그 병원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허리 통증과 몇 해 전 한 수술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말로만 듣던 응급실 뺑뺑이에 아픈 허리를 보호하려는 내 몸은 더 파르르 떨렸다. 구급대원마저 난감해했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통증이 심할까 세심하게 운전하신 구급대원께 감사 인사도 못 했다. 진단 결과 허리 디스크가 찢어진 곳이 두 군데였다.


갑자기 입원하면서 미처 준비 못 한 수저 사러 병원 편의점에 가다 거울 속 나를 봤다. 내가 아니었다. 폭삭 늙어버린 어떤 아주머니가 눈 맞춤하며 덩그러니 쳐다본다. 허리는 기역 자이다. ‘에구머니나 누구세요?’ 할뻔했다. 그래도 혼자 걸을 수 있다.

새 수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늘 함께 있어야 하고 생명을 잇는 소중한 수저. 고마움이 왈칵 다가와 멈칫 뒷걸음질 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다는데 너의 의미가 지금 이렇게 다가오다니 참 고맙다.


첫날은 통증으로 식판 들 힘도 없어 간호사 도움을 받았다. 하루 이틀 지나니 주위도 살펴지고 6인실 입원실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있다. 커튼 둘러친 한 평 남짓한 나만의 공간은 얼마나 아늑한지, 심지어 개인 텔레비전까지 있다. 종일 누워 있어도 된다. 얇은 커튼 하나로 너와 나를 구분한다. 코 고는 소리는 기본이요, 한숨 소리, 방귀 소리도 숨길 수 없다. 다 들린다.

창가 쪽 할머니는 밤새 랩도 가능하시다. 아이구구구, 어쩌구 저쩌구……,

그래도 괜찮다.


시간 되면 병실 침대 식탁에 삼시 세끼가 딱딱 차려진다. 환자복도 언제든 갈아입을 수 있다. 샤워실 따뜻한 물도 콸콸 쏟아져 불편한 자세지만 혼자 샤워가 가능하다. 의식주 해결되는 병원 생활에 점점 적응되어 갔다.


아침 8시면 담당의가 온다. 이런저런 주의 사항도 듣고 링거랑 약을 처방한다. 하루 두 번 물리치료실에 다녀오면 된다.

문득 이렇게 지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매일 필요한 것 없냐고 묻던 딸이 마스크까지 하고 병원에 왔다. 목소리에 약간 감기 기운이 느껴진다. 마스크를 내리는 순간 말간 콧물이 쭈르륵 흐른다. 눈이 쑥 들어가 퀭하다. 살짝 미안한 맘이 들었다. 그제야 이 호사로운 병원 생활을 접고 내 자리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자리를 대신하는 가족들의 수고로움이 나로 하여 힘을 내게 했다. 일상을 산다는 평범함이, 당연함이 어떤 이에겐 간절한 소망이 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리하여 열흘간의 아쉬운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관리하는 것이 숙제다.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생활 습관의 변화는 필수다. 바닥에 있는 물건은 무릎을 구부려 허리를 보호하며 집어야 한다. 발레리나가 되어 고상하게 내려가야 한다. 머리 감기는 뒤로 젖혀서 감고, 양말 신을 때도 의자에 앉아 다리를 교차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워서 신어야 한다. 불편하다. 참 불편하다. 허리를 보호하려니 무릎한테 미안할 지경이다. 그래도 큰 통증 없이 생활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입원 전에 비해 지금은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물론 언젠가 좋아질 것을 알지만 하루 일상의 피로감은 배가 되었다. 그래도, 그러므로, 감사할 이유밖에 없다. 내 두 손으로 수저를 사용할 수 있음과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음을 감사한다.

또 어느 순간은 불평이 감기처럼 올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