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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Jun 27. 2023

재입대하는 심정


로또 당첨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상님을 떠올리며 잠들기도 했고, 복권 명당을 굳이 찾아가 로또를 구입해보기도 했지만 내게 그런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언젠가 철학관에 갔을 때였다. 내게 직장을 중도에 그만두는 일은 없을 거라며, 꿋꿋하게 퇴직을 맞을 거라던 그분의 예측이 슬프게도 틀리지 않았나 보다. 일을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찼던 일 년 전의 나는 로또 당첨만 된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노라며 삶에 찌든 동료들 앞에서 비열하게 웃었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삶에서 요행을 바라던 이의 쓸쓸한 뒷모습을 한 채 그들의 비웃음을 견딜 준비를 하고.


다음 주부터 다시 출근이다.


일단 옷 몇 벌과 구두를 샀다. 옷은 언제나 있지만 또 없다. 올해 입을 옷은 언제나 없다. 더군다나 새로운 출발이란 사실과 새로운 착장은 충분한 인과관계가 있지 않은가. 신랑이 못 보던 옷 같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면 내게 그렇게 관심이 없었냐며 원래 있던 옷이라고 더 큰 소리로 반격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해두었다. 그리고 여름을 맞기 위해 피부과를 다녀왔고 렌즈를 다시 맞추고 머리를 했다.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항상 쓰던 볼펜도 사두었다. 옷을 살 때 잠시 행복했고 할부로 계산한 카드값을 충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복직을 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했다. 일을 하기 위해 소비를 하고,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을 하는 삶이라니. 어느 곳으로도 나아감이 없이 제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졌다. 이제 마음의 준비만 남았다.


왼쪽 목에 담이 결렸고, 소화가 안되기 시작했다. 불편한 마음을 읽고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요 며칠 마음이 어수선하다. 비는 시간 늘어져있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그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가 없다. 하나의 영상을 다 보지 못했고, 글이 읽히지 않았고, 이것을 하며 이내 저것을 떠올리는 바람에 어느 것 하나 집중할 수가 없었다. 복직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괜한 일에 신경이 곤두서고 예민해졌다. 조용한 노래를 들으며 마음이 심해에 닿았다가 커피를 마시며 다시금 떠오르곤 했다. 마음의 추가 연신 오르락내리락하며 마음을 쥐고 흔들었다.


정말 재입대하는 심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익히 잘 알고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심정. 전투력으로 무장을 하고 다시금 그곳에서 버텨낼 생각을 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쉴 기회조차 없이 계속 달렸더라면 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책임감 하나로 생각 없이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쉬면서 여실히 깨달은 것은 역시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자극 없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안일함과 고요한 정서가 더 맞는 사람이었다. 사람 사이에서 급격하게 에너지가 소진되는 사람인데 어쩔 수 없이 사람들 틈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직되고 무거운 조직문화에 이따금 반감이 들 것이고, 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아귀가 맞지 않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실력이나 노력보다 정치가 통할 때면 의욕이 꺾일 것이고, 불의에 때로 발끈할 것이다. 새로운 일을 마주해 두려울 것이고, 끊임없이 내 능력을 의심할 것이다. 의리 있는 상사가 될 것이냐, 유순한 직원이 될 것이냐의 기로에서 자주 흔들릴 것이다. 집에 와서 종결짓지 못한 일을 생각하고, 일터에선 신경 쓰지 못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새삼 죄책감도 느낄 것이다. 어김없이 예상되는 그 상황에 놓일까 나는 두렵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다. 평온한 일상 틈틈이 불안이 찾아든다. 아이들이 수시로 마음을 접을 때마다 견뎌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며, 불편한 감정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던 내가 이 불편함을 두고 어쩌지 못해 휘청거리고 있다.


언제나 해오던 방식대로 최악을 가정한 후 하루씩 불안을 덜어내는 중이다. 매일 조금씩 더 나아질 일만 남았다 위안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틈에 생각이 끼어들 때마다 노래를 들었다. 잠시나마 동떨어진 감정에 놓이며 그 순간을 벗어나곤 했다. 요사이 내게 가장 위로가 된 노래다. 이 곡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암흑을 뚫고 던져진 첫 소절에 감탄하며 엎드렸던 몸을 일으켰다. 처음엔 절망이 느껴졌지만 다시 들으니 희망이 들렸다. 죽음을 결심하는 데 큰 이유가 필요하지 않듯 사는데도 큰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불현듯 나타나는 상실감과 우울 속에서도 이 세상에 기대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나는 지금 잘하고 싶다는 바람을 말하는 것이다. 나를 다독이며 괜찮다 말하는 듯해서 접혔던 마음이 한 뼘쯤 펴지곤 했다.


이제 언제 맞을지 모르는 평일 대낮의 뜨거운 햇살에 나의 우울을 말려본다. 내가 글을 쓰며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내 안에 아직 감성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었는데 앞으로 얼마간은 조금 비뚤어질지도 모르겠다.



https://youtu.be/0xUi3gULpiU

 <아마자라시 버전을 BTOB 이창섭이 커버한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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