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나무와 사랑의 씨앗

by 방울리아

어느 마을엔 오래전부터 이상한 나무가 자랐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혐오의 나무’라고 불렀다.

언제부턴가 마을 한가운데 서 있던 평범한 나무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밤마다 가지가 길게 뻗어 마을의 집 지붕과 담장을 덮었고, 잎사귀 사이에선 누군가의 한숨과 비난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말투가 변하기 시작했다.
“요즘 40대들은 나이 값도 못하고 괜히 젊은 척하잖아.”
“남자들은 다 똑같아.”
“여자들은 너무 감정적이야.”
“요즘 애들은 책임감이 없어.”
“늙은 사람들은 다 고집불통이지.”
그 말들은 장난처럼 시작되었지만, 어느새 서로를 상처 내는 습관이 되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흉내 내기 시작했고,
마을의 공기 속엔 묘한 탁함이 감돌았다.
그때부터 혐오의 나무는 급격히 자랐다.
잎은 검은 비늘처럼 변했고, 뿌리는 길게 뻗어 사람들의 발밑으로 스며들었다. 어둠은 마을을 삼키듯 번져갔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무에는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붉고 매끈한 열매는 마치 사과처럼 탐스러워 보였지만, 가까이 가면 쓴 냄새가 섞여 있었다.


어른들은 그 열매를 따서 아이들에게 먹였다.
“이건 세상을 제대로 보게 해주는 거야.”
그 말 속엔 사랑이 아니라 불신이 섞여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엔 달콤하다며 웃었지만, 곧 서로의 눈빛이 달라졌다.

말투가 거칠어지고, 친구의 실수에도 쉽게 비웃었다.
그 장면은 마치 혐오가 조용히 스며드는 일상처럼 보였다 . 아무도 그것이 독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한 채.


그러나 그런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현수는 마흔둘, 나이키 에어조단 운동화에 후드티, 캡모자를 즐겨쓰는 마을 한가운데 있는 작은 목공 공방의 주인이었다.

현수의 손끝엔 오래된 나무의 결이 남아 있었고, 눈빛은 고요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영포티’라며 조롱했다.
“40이 넘어서 아이들 취미나 즐기고, 아직도 자기가 20대인 줄 알아, 아직도 꿈 타령이야?”
하지만 현수는 그 말에 웃기만 했다.

그는 새벽마다 공방 앞을 쓸고, 나무 조각을 모아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조각들은 아이들의 손에서 나비, 별, 나무로 변했다.
그는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자신이 믿는 결을 다듬을 뿐이었다.



경제는 서른다섯 살의 교사였다.
남자였지만, 오랜 세월 이어진 차별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교실에서 “남자답다”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너답다”고 말했다.


동료 교사들은 그를 유난스럽다고 비웃었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선생님은 남자 편도 여자 편도 아니래.”라는 농담이 돌았다.


하지만 그는 꿋꿋했다.
“나는 편을 가르지 않으려 한다.
세상은 이미 너무 많은 선으로 나뉘어 있으니까.”
그의 목소리는 단단했고, 아이들은 그의 수업에서 처음으로 ‘존중’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느꼈다.



미영은 서른아홉, 마을 공동 텃밭에서 일했다.
햇빛에 그을린 피부와 묶은 머리, 늘 흙 묻은 손톱을 가진 여인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여자가 저렇게 거칠면 시집은 가겠어?”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미영은 웃으며 손으로 흙을 고르고, 이웃들이 먹을 채소를 다듬었다. 비가 오면 흙이 무거워도 포기하지 않았다.


“땅은 정직해요. 밟으면 밟은 대로, 돌봐주면 돌봐준 대로 자라죠.”


그녀의 말투는 단단하면서도 따뜻했다.
아이들은 미영을 따라 흙을 만졌고,
그 흙 속에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병용은 일흔둘의 노인이었다.


백발이지만 눈동자는 여전히 푸르렀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향해 “나이 먹고도 세상 물정 모르네.”라며 빈정거렸다.
그러나 병용은 언제나 책을 들고 다녔다.
그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 때 늘 먼저 물었다.
“이건 너라면 어떻게 생각하니?”
그는 자신의 지식보다 상대의 생각을 듣는 데 더 익숙했다.
저녁이면 공원 벤치에 앉아 어린 학생들과 함께 시를 읽었다.
“어둠 속에서야 깨닫는구나.
조심하지 못한 내 말이 만든 그림자가 이렇게 깊은 줄은…”
그의 조용한 음성은 어둠을 가르는 등불처럼 들렸다.



지아는 스물둘, 대학생이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늘 잠이 부족했지만, 손님이 들어오면 먼저 인사했다.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어요.”
그녀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일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친구에게 교재를 나눠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요즘 애들은 철이 없어. 책임감이 없지.”라며 비웃었지만,

그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미소로 답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잖아요.”
그녀의 작은 친절은 마을의 어둠 속에 희미한 불빛처럼 남았다.



레미트는 난민이었다.


전쟁에서 도망쳐 이 마을에 왔다.
검은 피부와 억센 억양 탓에 사람들은 그를 멀리했다.


“저 사람들은 결국 우리 일자리 빼앗을 거야.”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대?”


하지만 그는 늘 말했다.
“이곳은 내게 두 번째 고향이에요.
내가 받은 따뜻함을 돌려주고 싶어요.”
그는 버려진 집을 수리하고,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미소에는 감사를 넘어선 진심이 담겨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혐오의 나무는 자라났다.
그 가지는 하늘을 가렸고, 낮에도 그림자가 내렸다.
마을의 공기는 무겁고, 사람들의 얼굴은 서로를 피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방 앞, 텃밭 옆, 학교의 복도, 편의점 앞,
그리고 골목 어귀의 작은 집 주변에는
아직 따뜻한 빛이 남아 있었다.

그 빛은 바로, 그 여섯 사람의 마음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느 날, 혐오의 나무가 마을 전체를 뒤덮을 듯 흔들리던 밤이었다.
하늘이 검게 잠기고, 바람은 사람들의 속삭임을 실어 날랐다.
그때 현수가 문을 열었다.
“이대로 두면 다 삼켜질 거예요.”
미영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씨앗은 심어야죠.”
경제는 아이들이 만든 그림책을 품에 안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마음을 심는 일이겠죠.”
병용은 흰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저 눈앞의 어둠을 조금이라도 밝힐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들은 언덕으로 향했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불빛 하나를 들고, 서로를 부축하며 올라갔다.
나무는 그들을 향해 뿌리를 흔들었다.
땅이 갈라지고, 검은 가지가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언덕에 오른다.
현수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씨앗이 잘 자리 잡도록 안내했고,
미영은 흙을 고르며 씨앗이 자랄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경제는 작은 그림과 이야기로 씨앗 위에 상상의 빛을 내려놓았다.
병용은 필요한 순간만 손을 살짝 보태며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지아는 물뿌리개로 씨앗에 물을 주고,
레미트는 골목 구석구석에 작은 빛을 흩뿌렸다.

씨앗은 천천히 깨어났다.
검게 빛나던 가지 사이로 빛이 스며들며,
골목 구석구석에서 어둠이 서서히 풀렸다.
아이들은 손끝으로 흙을 느끼며, 작은 숨결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언덕 위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친 그들은 미소를 교환했다.
바람에 흩트린 흙과 잔디 사이, 새싹 하나가 햇살을 받아 살짝 빛났다.

그 빛을 바라보며, 마음 한켠이 조용히 풀리는 느낌이 골목을 감쌌다.

혐오의 나무는 여전히 존재했다.
하지만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작은 빛과,
아이들의 손끝에서 깨어나는 새싹은
어둠 속에서도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골목은 여전히 조용했고,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언젠가 이 작은 빛이 퍼져,
마을 구석구석에 새로운 숨결을 남길지도 모른다.



작은 씨앗 하나,
마음 속에 심는 사랑 하나가
어둠 속에서도 길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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