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무게
누구나 한번은 ‘공익’을 말한다.
그 말은 가끔 바람처럼 가볍고, 때로는 바위처럼 무겁고, 꿀처럼 달기도 약처럼 쓰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또 그로써 자신을 증명한다. 그러나 바람이 지나가면 들판에는 흔적이 없다.
그 자리엔 단지 "비어 있음(空)"이 남는다.
한때, 나는 믿었다.
‘공익’이란 단어 속에 진리가 깃들어 있다고.
그 믿음이 나를 움직였고, 나를 소모시켰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공(公)’은 혹여 ‘공(空)’이 아니었을까.
그 ‘익(益)’은 정말로 누군가에게 남겨진 이익이었을까.
어쩌면 공익이란 "누구를 위한 선(善)"이 아니라,
누구의 욕망을 잠시 덮는 안개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 안개 속에서 나는 길을 잃기도 한다.
그리고 길을 잃은 채, 끝내 바람과 함께 앞만 보며 걷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공익의 가치를 믿고 싶다.
다만 그 믿음이 허무의 터널을 통과한 뒤의 것이라면 좋겠다.
텅 빈 그릇 속에서도 향기가 남듯,
이름뿐인 ‘공익’ 속에서도
조용한 사람들의 온기가 남기를 바란다.
공익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종종 말한다.
“국민을 위하여 일한다.”라고..."공익을 실현해야 한다고"...
그러나 그 말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래도 나는 그 말을 믿고 싶다.
누군가의 눈빛과,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은 움직였고, 몸도 움직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공익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공허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공(公)은 비워야 온전해지고,
익(益)은 남겨야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 비움과 남김은 언제나 사람의 계산 속에서 움직인다.
진심을 담으려 했던 손길은
어느새 성과와 보고서, 언론 기사 속 수치로 바뀌어 있었다.
공익은 공허로부터 태어난다.
허무 속에서만,
진실한 이익의 가벼움과 무게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 비어 있음이야말로,
모든 판단과 선택의 시작이 된다.
나는 공익을 다시 쓴다.
공익(空益).
비어 있으되, 이익을 남기는 것.
이 허무를 통과한 공익은,
말없이도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내가 하는 일은 정말 공익인가,
아니면 공허한 이익을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