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오늘이 너의 생일이 아니더라도
며칠 전에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에게 이 영상을 추천해줬어. 10초도 안 되는 영상은 "If today is your birthday, Happy Birthday"라는 인사말로 끝이 났지. 지금까지는 들어본 적 없는 인사말에 호기심이 생겨 채널에 들어가 보자 매일 올라오는 비슷한 영상들이 나타났어.
10초도 되지 않는 짧은 길이, 일본풍의 그림체, 어딘가 어색한 영어. 처음 봤다면 신기하겠지만, 옛날부터 인터넷의 구석진 곳을 들여다본 사람들이면 식상하다고 할 채널이었어. 그러나 내가 이 채널에서 감명 받은 지점은 그런 게 아니야. 모든 영상이 똑같은 인사말로 끝난다는 거지.
If today is your birthday
Happy Birthday
"만약 오늘이 당신의 생일이라면, 생일 축하드립니다"라는 상투적인 번역체로도, "오늘이 생일이야? 생일 축하해"라는 일상적 표현으로도 번역할 수 있겠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아. 그리고 매일 올라오는 영상들을 보며 떠오른 질문은 딱 하나야.
왜 하필 생일인 걸까? 그거야 당연히 사람들은 자신의 생일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지. 그러니 작가는 자신의 영상을 보는 누군가가 아무리 외롭더라도 생일 인사를 듣지 못한 채로 보내지 않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어쩌면 자신도 그 정도로 외로운 기억이 있기 때문에? 억지려나.
어쨌든, 매일 영상을 올리며 오늘이 생일인 사람들에게 생일 축하를 건네는 저 채널을 보니 어쩐지 아침, 점심, 저녁, 밤 인사를 한꺼번에 하는 트루먼이 생각나더라고. 시간대 상관 없이 전 세계에서 언제든지 과거의 영상을 볼 수 있는 지금은, 하루 단위의 인사가 아니라 한 해 단위의의 인사를 해야 규모가 맞는 걸 수도.
이토록 열심히 남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모습이 조금 어두운 채널의 분위기와 맞물려 매력이 배가 되는 것 같아. 너는 잘 살고 있냐고, 어찌저찌 사는 친구가 챙겨주는 듯해. 저 생일 축하가 그토록 여운이 남는 것도 그래서일까.
생일을 열심히 챙기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아예 신경 안 쓰는 사람들도 있어. 생일 인사를 하지 않으면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고, 일부러 생일 인사를 듣기 싫어서 아무에게도 생일을 안 알려주는 나도 있지.
나는 사람들이 왜 생일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지 모르는 쪽의 인간이야. 내가 태어났다는 게 그렇게도 중요한 사실일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부모님께 물어보니 네가 태어나서 지금의 네가 있는 게 아니냐고, 그러니 생일은 중요한 거라고 대답해주셨어.
그런데 난 옛날 일을 기억을 잘 못해서 그런지, 내가 태어나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태어났어도, 지금까지 내가 내린 결정들, 걸어온 길들, 겪은 일들이 없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리가 없잖아. 오히려 그런 것들을 기념해야 하는 게 아닐까?
힘든 일이 있었다면 그 일을 극복한 날을, 기쁜 일이 있었다면 그 일이 있었던 날을 말이야. 그게 기념紀念, 기억하고 생각함이잖아. 기억할 수도 없는 먼 옛날의 일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 지금까지도 살아있어, 앞으로도 영영 잊고 싶지 않은 일을 기념하는 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생일이 나의 첫 순간이니까 충분히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긴 하지. 그래도 첫 순간보다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야. 그러니 생일에 그렇게 신경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응, 적어도 난 생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도, 절친에게도 내 생일을 알려주지 않고, 친구의 생일을 챙겨주지도 않아. 오늘이 친구의 생일인 걸 알아도, 서로 생일을 챙겨주는 걸 봐도 말이지. 이런 나지만 기꺼이 친구로 남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
그래도, 부모님의 생일은 챙겨드리고, 부모님도 내 생일을 챙겨주셔. 그렇지만 우리 가족의 생일은 다른 집에 비하면 꽤 단출한 편이야. 평소에도 먹는 음식과 케이크, 그리고 생일 선물인 현금뿐이지. 선물이 가져야 할 제일의 가치는 유동성, 달리 말하면 환금성 아니겠어?
하, 다른 집이면 상상도 못할 이런 모습을 보면 생일을 안 챙기는 내 성격이 유전인지, 모방인지, 뭐가 됐든 부모님으로부터 온 건 확실한 거 같아.
이렇게 생일을 챙기지 않는 나를 보고 차갑다, 매정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나도 생일 선물을 챙겨주고 생일을 챙겨주는 친구가 딱 한 명 있어. 바로 내 생일을 항상 잊는 친구지. 몇 년이고 생일을 챙겨줬지만 그 친구는 내 생일을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어. 엎드려 절 받기가 따로 없지.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아무 걱정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대충 현금을 던져줄 수 있는 것 같아. 그 친구도 나만큼이나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사실 이것도 어렸을 때 한 번 기분으로 챙겨준 선물인데, 정작 내 생일 때는 아무것도 오지 않아서 오기로 매년 생일 선물을 보내는 거거든.
나도 마찬가지지만, 봐, 생일을 축하해준다는 것은 나중에 내 생일이 됐을 때 나도 생일 축하를 받을 거를 기대하고 있다는 거잖아. 그게 상대를 두고 무언가를 얻어내겠다는 심보가 아니더라도 말이야. 그저 막연히 '내 생일 때도 비슷하게 해주겠지'라는 생각은 다들 하고 있잖아.
내게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힘든 것은 끊임없는 왕래야. 단순히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꾸준히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지. 문자 좀 쓰자면 수행성이 있는 말을 하고, 그 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행동을 한다는 거야.
자동으로 뜨는 알림을 보고 난 뒤에야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을 하고, 너무 대충 고른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선물을 대충 골라 전하는 모습이 '나는 너를 아껴'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거야.
그렇지만,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저 진심을 담은 말을,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음성을 쉽게 전할 수 있는 이 시대의 힘을 빌려 전하면 되지 않을까? 위의 행동들이 가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런 편협한 용어로 인간의 복잡한 사회 행동을 싸잡아 부르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우리는 너무 먼 길을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네가 태어났다는 것을 기념하지도 않으면서 너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이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기 위해서 이 모든 절차를 밟을 필요는 없잖아.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계속해서 확인할 필요가 어디 있겠어. 서로를 완전히 믿지 못해 계속해서 말과 행동으로 진심을 대신해 나가는 모습은, 차분히 돌이켜 보면 슬프지 않아? 사실 정에 있어 생일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잖아.
기쁨을, 슬픔을,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사이를 많아 봤자 일 년에 겨우 한 번 있는 생일이 어떻게 갈라놓겠어, 불가능하지.
그러니까, 말과 행동을 줄이고 마음을 늘려나가자. 마음으로 관계를 잇자. 오늘이 너의 생일이 아닐지라도, 나는 너를 축하해. 네가 지금 내 눈 앞에 존재함을, 지금 나의 말을 들어줌을,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감을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