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지만 누군가와

실례지만 누구신지

by 수필천편

노래수업인 가곡합창을 하러 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평생학습관 길 나들이다. 버스를 탄다.

지나치는 정류장마다 어디인지를 확인하는데 대부분은 낯익은 이름들이다.


문제는 이름과 정류장의 장소를 꿰지 못한다.

그나마 기억나는 몇 개 정도의 정류장 이름을 불러본다.

그러다가도 장소는 익숙해 보이는데 정류장 이름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다른 장소의 정류장을 자주 다녀도 혼란지경인데, 이곳이라고 잘 될까.


그래도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건 어느 순간 '여기다!'라고 생각이 퍼뜩 떠오르는 것이다.

낯선 길 같으면서도 간판들을 보면 익숙한 이름들이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분명 내 기억 속에 있는 가게들의 간판이 줄지어 서있다


느릿하게 올라가는 경사길의 언덕배기가 기억을 소환한다.

저기만 올라가면 바로 왼쪽에 평생학습관이 있다.

뒤를 돌아보니 반대편 정류장이 보인다.

'그래! 저 정류장이 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지?'

그 순간 암담하던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며 가는 길이 뚜렷하게 보인다.


언덕길을 올라가고 왼쪽으로 꺾으니 목적지가 보인다.

평생학습관이다. 들어서며 1층 왼쪽 끝이 바로 가곡을 부르는 교실이다.

제대로 찾았다. '가곡노래방' 드디어 도착했다.

문을 열어보니 사람들이 제법 앉아 있다.

제일 앞자리에 앉는다. 남들은 다들 뒤에 앉는다.


누군가가 마주 보고 앞에 앉는다.

나를 보고 웃는다. 안경 쓴 여자다.

기억나지 않아 물어본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기억 안 나요? 가곡 선생이잖아요? 작년에도 배우지 않았어요?"

그제야 조금씩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안경을 쓰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노래반주를 보조하는 꼬마 아가씨가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에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노래교실의 인원수가 많지 않다. 그것 때문에 잘린 걸까?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다.


어쨌든 오전 수업은 잘 끝났다.

이제 오후 수업인 주민센터 시낭송 교실에 가면 된다.

버스를 잘 타야 될 텐데... 골똘히 생각하며 걷는데,

"어머, 수필씨!" 웬 여자가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저예요! 시낭송! 기억 안 나요?"

이렇게 만났는데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나를 잡아 끈다.


버스는 저 길 건너편인데, 식당을 바라보니 저절로 배가 고파온다.

"그래요, 배도 고픈데 같이 먹죠."

공깃밥 한 그릇과 깍두기, 그리고 뼈에 붙은 고기를 뜯어먹는 식당이다.


그렇다. 바로 그, <전설의 감자탕>이다.

출입문을 등지고 열심히 먹었다. 먹을만한 맛이다.


더군다나 가는 방향이 같다고 해서 버스까지 같이 탔다.

"두 명이요!" 카드를 댔다.


시낭송 그 회원 이름은 집에 와서야 불현듯 생각이 났다.

실명을 밝힐 수 없지만 비슷한 가명으로 대신해서, '운전자 씨' 정도로 한다.

내릴 때 보니 우리 동네서 내린다. 한동네 살고 있었다니!


아... 어디가 어딘지 누가 누군지 도통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