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 턱 쐈다

기억을 추궁한다

by 수필천편

그 어두움을 지워버리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턱 쓴 사람은 내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다. 도시를 벗어난 야외 식당에서, 열다섯 명 되는 모임 식구들이 모였다. 그 가운데 나만 남자다.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큰 상을 받아서, 그 일로 야외에 모여 식사한 날이다. 동료의 차에 같이 타고 회식 장소를 찾아간다. 언제 인가도 한 번 그곳 식당을 간 적이 있다. 그러니 오늘이 두 번째이다. 그런데 식당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백반집이라고 해야 할까? 고기도 있다. 도심을 벗어난 야외이기에 한적했고, 조용했다. 간 목적에 합당한 곳이다. 일단 열심히 먹는다. 시낭송 수업 동료 중 한 명이 큰 상을 받아 한턱 쏘는 날이다. 축하해 주고 음식도 맛있게 먹어주었다. 간 김에 한 명씩 시를 낭송한다. 나는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를 낭송했다. 시낭송하는 회원들 무척 낯선 시인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 시를 오랜만에 낭송해 보니 감정도 제대로 실리지 않고 흐릿한 느낌에 너무 두서없이 외우기만 했다. 담백하게 낭송하지도 못했다. 낭랑한 목소리도 아니었다. 목소리 색깔이 좀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주 뒤에 이 다른 시낭송 무대에서 같은 시를 낭송할 계획이다. 좀 더 낭송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숙하기 때문이다. 18일 이주 남짓 남았다. 날짜와 시간을 헤아려보니 눈 깜짝할 새 돌아올 시간이다. 산에 가는 시간, 따로 걷는 시간에 늘 낭송을 해야겠다 싶다. 그리고 이 일정이 마무리되면 이번 달의 큰 일정은 없다. 겨울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12월에는 바깥 활동들이 하나씩 정리되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바깥 행사가 끝나고 동료와 함께 차를 동승하고 돌아온다. 바깥에서만 너무 돌아다닌 기분이다. 돌아와 씻고, 일정 기록하며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으니, 이제야 좀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도 같다. 목도 마르고 입술도 마른다.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들에 너무 마음을 썼나 보다. 긴장을 풀 시간이다. 집에 돌아왔으니 긴장이 저절로 사라진다. 물 한잔 차분히 마시고 완전히 어둑해진 밤 시간을 보낼 때다.


바깥 시간을 좀 보내고 와서 글을 쓰는데, 하품이 난다. 그것도 바깥일이라고 그러는지, 몸을 그리 쓴 것도 아닌데 말이다. 벌써 어둑한 밤이라도 된 것처럼 어두워진다. 겨우 여섯 시에 들어섰는데, 가을날의 해거름은 무척이나 빨리 어두워진다. 붉은 노을이 잠깐 그려지다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는 어두움 위에 적막이 내린다. 컴퓨터의 화면과 조명, 그리고 책상 달력과 기록노트가 박제라도 된 것처럼 생뚱맞게 보인다. 이제 내일 일과를 떠올려본다. 금요일은 평생학습관 가는 날이다. 사군자 그림 수업이다. 그림 그리기엔 젬병이라 어떻게 손을 놀려야 할지 아리송하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니 손을 놀릴 수 없다. 확실히 치매는 치매다. 그림 그릴 때 선생님의 그림 그리는 과정을 보면서도 돌아서면 깜깜이다. 다른 사람들 곧잘 따라 하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선생님의 그림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있고 학생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문제는 결국 나다. 노력하려 하지만 정말 이상할 정도로 잘 되지 않는다. 치매란 이런 것일까? 잠깐 밝은 조명이 켜지다가 하루 종일 깜깜해지는 기분이다. 날이 어두워져 조명을 밝힐 수는 있지만 머릿속의 조명은 여전히 꺼진 듯 깜깜하다. 그 어두움을 지워버리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계속 기억나게 추궁하는 도리 밖에 없지 않은가? 잠자려고 누우면서도 추궁하고, 일어나서 산에 갈 때도 추궁하고, 무엇 하나 할 때마다 닦달하는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떠올려야 할 것들 자연스럽게 나올 때까지다. 오늘 밤에도 나는 나 자신을 추궁하며 쥐어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