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이 남긴 깨달음
예전에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고, 다 같이 어울리는 것도 즐거웠고, 새로운 썰을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술을 많이 먹고 힘들어도 그냥 그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고 오는 길에 공허한 느낌이 들고, 술을 많이 먹은 다음날에는 현타가 온다. 몇 번 겪다 보니 내 변화를 인정하고 감정 정리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1. 내가 지금 내세울 게 없어서 이러는 걸까?
- 내세울게 생긴다면 관계 속 공허함이 사라질까?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원인이 될 수 없다.
2. 지금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서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라 이러는 걸까?
- 어느 정도 영향은 줄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은 내 모습이 이 감정을 느끼도록 속도감을 준 정도이고, 언젠가는 이 기분을 분명 느꼈을 것이다.
3. 그렇다면 나는 어떤 관계에서 현타가 오는가?
- 사회적 틀에 맞추려고 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어찌 보면 올해 내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결혼을 위해 연애를 하고 썸을 타는.. 흐름에 맞춰 사는 게 편안하고 좋을 순 있지만, 나는 다른 이유 없이 틀대로 살려는 사람을 보면 조금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다. 상대가 나쁜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다. 그냥 내가 변한 것이다.
- 내가 먼저 그들에게 새로운 주제거리를 던질 수도 있었지만, 나 또한 항상 이성에 관한 소재를 꺼내기도 했다. 서로에 대해 갈수록 희미해지니까 누구나 대화할 수 있는 쉬운 주제를 꺼냈던 것 같다. 굳이 이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4. 내가 즐거웠던 관계는 무엇인가?
한 주제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설레고 들떴었다. 나는 사람들의 속이야기를 듣고 싶다. "안정적이고 싶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다"는 말은 나에게 답답함을 안겨준다. 그 사람은 진심일지라도, 그 속에 무언가 다른 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 했던가. 그 우주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분명 본인만의 고유적인 것이 있을 텐데.. 속에서 외치는 그 소리를 꺼내어 듣고 얘기하고 공유하고 싶다.
5. 그럼 나는 앞으로의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일단 당분간 약속을 잡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에게 집중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해야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좀 더 즐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외부보다 내부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산책, 글쓰기, 독서 등 고요한 시간, 사유의 시간을 충분히 갖자. 지금 글을 쓰는 것처럼 하나의 주제를 정해 생각을 발전시키고 정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만나게 된다면 무슨 주제로 얘기할지 내가 미리 생각하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동안 나에게 만남은 "그 사람"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이제는 내가 바뀐 만큼 관계의 모양도 바꿔보는 게 어떨까 싶다. 맞추는 방식이 아닌 주도적으로 주제를 끌어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요즘 내가 가진 생각을 먼저 얘기하고 질문한다면 내가 원하는 대화로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나와 연결되는 시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거리를 조절하고 내면의 방향을 다시 잡아가는 중이다. 성숙과 성장의 시기를 거쳐 뿌리 깊은 단단한 나무가 되리라.